국내 과학자의 34% 정도가 자신의 전공과는 다른 분야에 관심을 갖거나 실제로 그 분야와 소통하는 융합형 연구를 지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 강병남 물리천문학부 교수팀이 지난해 2월부터 지난 22일 50회로 끝난 한국일보 기획 연재 '과학자가 부러워하는 과학자'를 활용해 국내 과학계의 인맥 네트워크를 분석한 결과, 50명의 과학자 중 17명이 자신의 전공과 다른 분야 과학자를 추천했다. 과학계의 3분의 1 정도에 '융합 인맥'이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번 분석은 국내 과학계 전체로 해석하기에는 표본이 적다거나 추천 기준이 저마다 다르다는 등의 한계가 있지만 언론에 소개된 과학자 인맥을 복잡계 연구기법으로 들여다본 거의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과학계 최전선의 인맥을 보여주기 위해 기획한 '과학자가 부러워하는 과학자'는 김창경 전 교육과학기술부 제2차관을 시작으로 과학자가 본받을 만한 다른 과학자를 릴레이식으로 추천ㆍ소개하는 방식이었다.
강 교수팀은 공학박사인 김 전 차관이 추천하는 것으로 시작해 김춘호 한국뉴욕주립대 총장이 추천 받는 것으로 끝난 전체 시리즈에서 소개된 과학자들(51명)의 연구분야를 살폈다. 과학자 각각의 전공분야가 아니라 인연이 생기게 된 연구분야를 따져본 것이다. 그 결과 물리학이 14명, 컴퓨터공학과 항공우주기계공학이 각각 7명, 화학ㆍ생명공학과 신소재공학이 각각 6명, 지구과학이 4명, 과학행정이 3명, 전자공학과 의공학이 각각 2명이었다.
연구팀은 같은 분야를 연구하는 과학자를 한 그룹으로 묶은 다음 추천한 과학자와 추천 받은 과학자를 화살표로 연결해 전체 인맥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그림을 그려봤다. 이 그림 중 같은 그룹 안에서 이어진 화살표는 같은 연구분야끼리의 네트워크, 서로 다른 그룹을 연결하는 화살표는 상이한 연구분야끼리의 네트워크다. 모두 50개의 화살표(인맥) 가운데 17개가 다른 연구분야와 이어졌다. 강 교수는 "상이한 연구분야를 연결하는 링크가 과학자들 간의 융합 가능성을 열어준다고 보면 연재를 통해 나타난 전체 링크의 34%가 융합 인맥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 융합 인맥은 서로 다른 집단(연구분야)을 연결하는 매개 역할을 한다. 강 교수는 "하나하나는 작은 인연이지만 이런 인맥이 꾸준히 이어지면 유용한 정보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힘을 발휘한다"고 설명했다. "서로 다른 연구분야의 과학자들끼리 만나는 경우는 같은 분야끼리보다 드물지만 일단 한번 만나 의견을 나누다 보면 그 전까지 생각지 못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학에서는 이 같은 인맥을 '약한 연결의 힘(Strength of weak tie)'이라고 부른다. 국내 과학계 네트워크의 34%가 이 같은 약한 연결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셈이다.
다양한 경로로 여러 구성원과 맺는 사회의 인적인 연결망을 물리학에서는 '멀티플렉스 네트워크'라고 부른다. 네트워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핵심 링크를 찾아내는 것은 이 분야를 연구하는 물리학자들의 최대 관심사다. 사회 변화를 이해하는데 핵심 링크가 중요한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연재 속 과학자들끼리 인연이 생긴 경로를 따져봤다. 그 결과 크게 4가지 유형의 관계망이 나타났다. 직장 동료가 10건, 같은 직장은 아니지만 관심 분야가 같아 알게 된 경우가 32건, 전공은 다르지만 같은 학교 동기나 선후배인 경우가 6건, 기타의 경우가 2건이었다. 강 교수는 "전문가 집단인 과학계 인맥은 학연이나 그 외 경로로 형성된 관계(8건)보다 전문적인 관심사를 공유해 형성된 관계(42건)가 주축"이라고 말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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