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몇의 친구와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대숲을 걸었고 호숫가에서 물수제비를 떴다. 바다에 닿아 해변을 어슬렁거렸다. 우리의 손에는 제각각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일행의 막내였던 S의 손에는 손바닥만한 녹음기가 들려 있었다. "소리를 모으는 거야?" 내가 묻자 S가 수줍게 대답했다. "어딘가에 가면요, 사진을 찍어 이미지를 남기고 싶기보다는 그 순간 그곳의 소리를 따고 싶은 마음이 앞서요. 그래서 녹음기를 샀어요." 우리는 숙소에 짐을 풀고 테이블에 둘러앉아 맥주를 마시며, S가 채집한 소리들을 들었다. 대숲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해변의 자갈들이 다글다글 파도에 쓸려가는 소리. 처마 밑 풍경 소리. 지나간 시간, 지나온 장소의 소리들. 사진을 찍듯, 내 삶의 어떤 순간들도 소리로 남겨두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S처럼 내가 소리를 기록해 두거나 할 일은 없을 것 같지만, 이젠 어쩌면 곁의 소리들에 귀를 깊이 기울이게 될지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날 밤은 잠을 쉽게 이루지 못했다. 자리가 설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불 위에서 이리저리 몸을 뒤채는 사이, 창밖으로 부옇게 하늘이 밝았다. 파도가 가볍게 찰싹였고 갈매기들이 끼룩끼룩 울었다. 아. 바닷가의 아침에는 이런 소리가 들리는구나. 그제서야 가만히 잠이 밀려왔다. 모로 누워 몸을 둥그렇게 말고 있는 나의 이 순간을, 베개 밑으로 스르르 잠겨드는 나의 몽롱한 머리를, 아침 갈매기들의 소리로 기억하고 싶었다.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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