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낮 12시쯤 경기 고양시 덕양구 행주대교 북단 어항. 행주어촌계 어민들이 새벽 조업에서 잡은 실뱀장어를 플라스틱 통에 옮겨 담고 있었다. 잡힌 실뱀장어는 작은 통의 절반도 채우지 못할 만큼 양이 적었다. 요즘 한강 하류의 실뱀장어 조업 철이지만 사정이 이렇게 최악이다.
박찬수 어촌계장은 "4월 말이면 한번 조업에 실뱀장어를 많게는 1,500~1,600마리(200g), 못해도 700~800마리는 잡아야 하지만 오늘 새벽에는 100마리 밖에 못 건졌다"고 울상을 지었다. 강으로 올라오는 실뱀장어를 잡아 1년 정도 키우면 양식 민물장어가 된다. 실뱀장어는 3, 4년 전만 해도 마리당 1,500원 선에서 거래됐지만 근래 들어서는 5,000원까지 올랐다. 최근 몇 년 새 씨가 말라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른 것이다. 박 어촌계장은 "이번 달까지 최소 1,500만원은 벌어야 하는데 잡히는 게 없어 100만원도 벌지 못했다"며 "올해는 지난해 수입(3,400만원)의 반타작도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강 하구에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가양대교부터 자유로 장월IC까지 한강 하류 30㎞ 구간은 실뱀장어와 황복, 참게 등이 풍부한 황금어장이었지만 최근 몇 년 새 생태환경이 급격히 변했다는 게 어민들의 말이다. 특히 '붉은 지렁이'로 부르는 정체불명의 벌레는 행주대교 인근 신곡 수중보를 기점으로 5~6년 전까지 하류에서만 가끔 그물에 잡혔지만 2~3년 전부터는 개체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상∙하류를 가리지 않고 대량으로 잡히고 있다는 것이다. 한 어민은 "촘촘한 실뱀장어 그물에 걸리는 어종의 70~80%가 이 벌레"라고 한탄했다. 노끈 굵기에 길게는 1m까지 자라는 이 벌레는 독성이 있는 끈끈한 진액을 내뿜어 함께 그물에 걸린 실뱀장어를 죽게도 만든다는 것이다. 신경이 예민한 사람은 마비증상을 호소할 만큼 독성이 강하다고 어민들은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경기도 당국은 유형동물에 속한 '끈벌레'로 추정할 뿐 벌레의 종(種)과 정확한 유입 경로 등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끈벌레는 신경계 독소를 이용해 어류를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 바다의 포식자다. 경기도 관계자는 "외형상 끈벌레와 유사하지만 전문가나 연구기관이 없어 생태학적으로 유해어종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며 "우리도 대책이 없어 환경부에 도움을 요청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각종 오염물질까지 유입돼 한강하구를 병들게 하고 있다. 지난 20일 새벽 화재가 발생한 고양시 현천동 난지물재생센터 인근 폐비닐 야적장 현장에서 불에 탄 폐비닐 등이 유입돼 한강에 시커먼 띠와 부유물이 지금도 떠다니고 있다. 여기다가 지난 겨울 뿌려진 제설용 염화칼슘도 흘러 들어와 그물을 망치고 있다는 게 어민들의 설명이다. 박 어촌계장은 "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세시간 조업에 3,000만원을 벌 정도로 천혜의 황금어장이었던 한강하구가 급속히 황폐화하고 있다"며 "정부당국이 조속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환직기자 slamh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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