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아기 살해까지 생각하다 베이비박스 알고 달려왔대요"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아기 살해까지 생각하다 베이비박스 알고 달려왔대요"

입력
2013.04.26 18:31
0 0

"아기를 보는 순간 주저앉았지 뭡니까. 아기가 포대기에 있는 것도 아니고 수건에! 깨끗한 수건도 아닌데. 교회에 있던 모든 사람이 저와 함께 목놓아 울었어요."

그 때가 2010년 3월이었다. 서울 관악구 난곡동 주사랑공동체교회 이종락(59) 목사는 베이비박스에서 처음으로 '딩동'하며 벨이 울린 순간을 잊지 못한다. 2009년 12월 설치한 베이비박스에 3개월 만에 첫 아이가 들어온 시간은 낮 2시 40분이었다. 뱃속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갓난 아이. 탯줄 자른 모양을 보니 집에서 태어난 아이였다.

3년간 180명… 요즘은 한 달에 18명꼴

이 목사가 베이비박스를 설치하려고 마음먹은 것은 2007년 봄에 겪은 일 때문이었다. 누군가 교회 문 앞에 아이를 두고 갔다. 봄이지만 추운 날이었다. 밖에서 한동안 방치된 아이에게 저체온증이 왔다. 산소를 투여하고 분유를 먹여 간신히 아이를 살렸다.

베이비박스는 그렇게 버려진 아이들 목숨을 살려보자고 시작한 일이었다. 외국 사례를 연구해 작은 철제상자를 주문 제작, 교회 담벼락에 그 상자를 설치했다. 베이비박스는 산소공급 장치와 온풍 장치를 갖췄고, 누군가 문을 열면 교회 안 벨이 울리도록 했다.

지금까지 3년 동안 베이비박스를 통해 180여명의 신생아가 들어왔다. 벨이 울리면 즉시 밖으로 뛰어나가 베이비박스를 확인하는데, 그 동안 아이 앞을 떠나지 못하고 서성이는 부모가 절반이다. 이 목사가 얘기를 나눠 보면 "좋은 부모를 찾아달라"는 엄마도 있고, "찾으러 올 테니 며칠만 키워 달라"는 부모도 있단다. 대부분 엄마고, 그들의 60%는 청소년 미혼모다.

아이가 베이비박스에 들어 오면 일단 경찰에 신고한다. 경찰이 관할구청에 연락하면 구청에서 아이를 데려가 시립병원에 맡긴다. 구청에서 데려가기까지 사나흘 정도를 이 목사가 키운다. 시립병원에 인계된 아이에게 장애가 있으면 병원에 남기고, 건강에 이상이 없으면 보호시설로 넘겨진다.

베이비박스, 논란의 중심이 되다

선의에서 시작된 그 베이비박스가 지금 첨예한 논란의 중심에 놓여있다. 지난해 8월 새 입양특례법이 시행된 이후다. 입양아동의 권리를 보호하고 입양절차를 엄격하게 적용한다는 취지의 개정 법률은 입양을 위해서는 친부모의 출생신고를 의무화하고 있다.

이 목사는 법 시행 이후 베이비박스에 갑자기 아이들이 몰려들었다고 주장한다. 미혼모 입장에서 기록에 남을까, 세상의 시선이 두려워 출생신고를 하지 못하고 결국 아이를 버린다는 것이다. "그 전에는 한 달에 한두 명이었고 안 들어온 달도 있었어요. 그런데 작년 8월부터 갑자기 늘었어요. 한 달 평균 18명. 부모들의 편지를 보면 다 입양특례법 때문이라 말합니다." 이 목사의 얘기다.

그러나 이 법을 옹호하는 이들은 아동유기가 법 시행과 상관 없다고 주장한다. 특히 2010년 프로라이프의사회의 낙태 의사 고발 이후 낙태 시술이 어려워지면서 더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아동매매나 불법입양 등의 폐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출생신고 절차는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또 입양절차만 완료되면 가족관계증명서에서 관련 기록이 삭제되는데도, 베이비박스를 찾는 부모들이 이 사실은 모른 채 법 탓만 한다고 지적한다. 일부는 이 목사의 선의(善意)가 의도치 않게 영아유기를 조장ㆍ방조한다고 비판한다.

"베이비박스 없었다면 이 아이들은…"

이 목사는 이런 비판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 목사는 반론을 위해 몇 가지 사례를 들었다. "한 엄마가 고백을 했어요. 아기를 죽일 마음으로"산에 데려가 아이 목을 눌렀다는 거예요. 어떤 엄마는 창문 밖으로 아이를 던질 생각을 했다가 베이비박스 얘기를 듣고 곧장 달려왔대요. (영아유기 증가가) 과도기 부작용이네 뭐네 하는데, 생명보다 중요한 게 있습니까?" 베이비박스가 없었다면 영아를 몰래 유기하거나 살해하는 경우도 있었을 거란 얘기다. 그는 "한국처럼 편견이 심한 나라에서 미혼모가 출생신고할 용기가 생기겠냐"며 "아무리 좋은 법이라도 법 때문에 아이를 버리면 그 법의 존재가치는 없다"고 단언했다.

결국 베이비박스는 미혼부모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경제적 현실을 감당할 수 없는, 또는 감당하지 않고자 하는 부모들이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퇴로'일 것이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한국에서 그 편견이 사라질 때까지, 또는 미혼부모가 자기 아이를 스스로 키울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질 때까지, 매일 밤마다 누군가 아이를 안고 주사랑공동체교회 근처를 서성일 것이고 베이비박스 벨 소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김현정 인턴기자(서울여대 영문4)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