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출생신고 강요로 미혼모 낙인" "입양 완료 땐 기록 안 남아"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출생신고 강요로 미혼모 낙인" "입양 완료 땐 기록 안 남아"

입력
2013.04.26 18:30
0 0

현행 입양특례법은 입양아동 권리 보호를 위해 지난해 8월부터 시행됐다. ▲시군구에 입양 신고만 하면 되던 것을 가정법원 허가제로 전환하고 ▲입양 신청시 출생신고를 의무화하며 ▲출생후 7일이 지나야만 입양동의 효력을 인정(입양숙려)하는 것이 법의 골자다.

입양특례법은 입양이 인신매매 수단으로 악용되거나 해외에 고아를 수출하다시피 했던 현실을 바로잡자는 취지에서 개정됐다. 가급적 친부모가 양육할 수 있게 하고, 친부모 정보를 기록으로 남겨 입양아동이 성인이 되었을 때 친부모를 찾을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법과 현실의 간극

현재 입양특례법 재개정(절차 완화)을 주장하는 이들도 이 법의 취지에는 대체로 동의하는 편이다. 그러나 문제는 법의 목적ㆍ이상과 한국의 현실 사이에 간극이 존재한다는 점. 법 재개정을 요구하는 쪽에서는 당장 법이 무서워 아이를 버리는 사례가 속출할 정도로 사회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마당에 아무리 좋은 법인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주장이다. 김홍중 입양특례법 재개정추진위원회 집행위원장은 "모범답안을 가져왔지만 현실에 맞지 않기 때문에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법을 유지하고자 하는 쪽에서는 법을 오해해서 생기는 문제일 뿐이며 입양특례법 안에서 이런 부작용이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한다. 결국 입양특례법 논란의 핵심은 법과 현실의 간극이 법 개정으로 풀어야 할 만큼 넓은가, 아니면 법 체계 안에서 감싸 안을 수 있는가로 요약된다.

출생신고는 주홍글씨인가

양측이 가장 첨예하게 맞서는 부분은 바로 출생신고 의무 조항이다. 법 제11조는 입양신청에 출생신고 서류를 요구하는데, 출산 기록이 남을 것을 우려한 미혼모들이 입양을 기피하고 아이를 유기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법 개정을 요구하는 법무법인 마당의 송윤정 변호사는 "친생부모 출생신고가 없으면 법원의 판단을 받을 수조차 없다"며 "사회적 편견과 경제적 어려움을 감당할 수 없는 미혼모에게 무조건 출생신고를 강요하는 것은 비현실적 처사"라고 말했다.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이종락 목사는 "(출생신고 없이) 베이비박스에 들어온 아이들도 행복할 권리가 있는데 왜 이 아이들에게서만 입양될 권리를 박탈하는가"라고 개탄했다. 입양이 안 되거나 파양이 되는 경우, 출생기록이 친모의 가족관계증명서에 남는다는 점도 재개정 요구를 떠받친다.

그러나 법의 유지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출생신고로 아이가 가족관계증명서에 올랐더라도 입양절차 완료시 기록이 말소된다는 점을 내세운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소라미 변호사는 "가족관계증명서 기록이 사라지는 대신 친양자관계증명서가 따로 생겨 여기에만 기록이 남는다"며 "이 증명서는 친생부모 본인이나 성인이 된 입양대상자만 발급받을 수 있기에 정보유출 우려가 없다"고 반박했다.

까다로워진 절차

친생부모가 입양 의사를 밝혔더라도 출생 1주일 이후에만 효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입양숙려제(법 제13조)도 법 재개정론자들의 지적을 받는 부분이다.

송윤정 변호사는 "미혼모는 보통 비밀 출산을 하고 병원을 이용하기 어려워 하루 이틀을 버티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법원이 입양을 심사하는 동안 입양의사를 철회할 수 있는 만큼 별도의 숙려기간을 둘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무법인 정도의 이한본 변호사는 "1주일도 고민을 하지 못하고 결정하도록 한다면 아동이 원래 가정에서 양육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라 반박했다.

일부에서는 입양특례법으로 입양 절차가 까다로워진 것을 문제 삼는다. 입양부모이기도 한 김홍중 위원장은 "입양이 어려워져 많은 아이들이 보육원 등 시설에 방치되고 있다"며 "입양을 해 본 사람 입장에서 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을 하루 빨리 (입양)가정으로 보내는 일"이라 주장했다.

절충 가능성은

현재 양측의 주장은 타협의 접점을 못 찾고 팽팽히 맞서는 형국이다.

하지만 좁게나마 두 가지의 가치를 동시에 추구할 만한 여지는 존재한다. 우선 입양특례법은 그대로 둔 채 입양 사실이 철저히 비밀에 부쳐질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방향. 소라미 변호사는 "가족관계등록법을 고쳐 기본적 정보 이외 부분은 본인만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식으로 비밀을 보장하면 된다"고 말했다.

가족관계증명서상 출생신고가 아닌 다른 방법을 통해 친생부모 관련 기록을 남기면 된다는 대안은 법 재개정을 전제로 한다. 송윤정 변호사는 "(입양이 되면) 어차피 말소될 출생기록 때문에 아이들을 유기로 내몰 필요는 없다"며 "친양자관계증명서나 입양원 기록을 통해 성인이 된 입양 아동이 친생부모 기록에 접근하면 된다"고 말했다.

베이비박스를 떠올리는 부모들에게 다른 방법이 있다는 점을 알리는 것도 필요하다. 부모들은 "좋은 가정에 아이를 보내 주세요"라는 바람을 남기지만, 현실적으로 베이비박스에 들어온 아이는 입양가정이 아닌 보육시설(고아원)로 간다. 보육시설에서 입양이 되기는 쉽지 않다. 이한본 변호사는 "사람들이 베이비박스는 알지만 애란원(미혼모 복지시설)은 모른다"며 "미혼모가 선택할 최후의 퇴로는 베이비박스가 아니라 미혼모 보호시설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