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
26일 오후 정부의 개성공단 잔류인력 철수결정을 접한 플라스틱 용기가공업체 A사 대표는 절망적으로 탄식했다. 그는 "말이 철수결정이지 금강산처럼 사실상 폐쇄수순에 들어갔다고 본다"고 말했다.
스포츠 의류업체를 운영하는 B사 대표 역시 "지난 10년 동안 정말로 피땀을 쏟아 부었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끝날 줄은 몰랐다"며 "이젠 미련을 버리고 사업을 접기로 했다"고 말했다. 설령 남북관계가 풀려 개성공단 문이 다시 열린다 해도, 지금처럼 하루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안감 속에선 다시 공장을 돌릴 엄두도 의욕도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입주기업들은 정부가 취할 '중대조치'의 수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 내용이 개성공단 잔류인력철수라는 것은 예상했지만, '철수권고'냐 '철수명령'이냐에 따라 기업들의 대응은 다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권고'정도였다면, 입주기업 상당수는 개성공단 인력을 그대로 잔류시킬 계획이었다. 한 입주업체 관계자는 "우리는 50년간 투자를 보장받고 개성에 들어갔다. 이제 한 번 나오면 다시 돌아가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어떤 경우든 끝까지 남아있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가 사실상 '명령'수준의 철수결정을 내리자, 입주 기업들은 망연자실함을 감추지 못했다.
끝까지 개성공단을 사수하려고 했던 현지 잔류직원들도 청천벽력이란 반응을 보였다. 섬유업체 D사의 직원은 이날 본지와 통화에서 "오늘 하루 종일 삼삼오오 모여 TV를 시청하면서 정부입장발표만 기다렸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갈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이제 별 수 없이 한국으로 돌아갈 짐을 꾸리게 됐다"고 말끝을 흐렸다. 그에 따르면 현재 공단에 남아있는 남측 근로자들의 신변은 안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재권 개성공단기업협회장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현 시점부터 123개 전 입주기업의 의견을 종합한 후 정부에 입장을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정부에 공단 정상화 의지가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보상과 지원대책은 그 후에 논의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입주기업들은 어떤 정부의 정상화지원조치도 사업중단을 보상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의료업체 C사 대표는 "엄밀히 말하면 개성공단철수는 부도선고나 다름없다"며 "공단 내 공장이 전부인데 아무리 정부가 금전적 보상을 한들 사업체가 사라진 마당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개성공단기업 중 상당수는 다른 공장들을 다 접고 개성에 '올인'하거나, 사업주 사재와 부채까지 쏟아 부은 곳들이어서 더 이상 재기는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보상을 위한 정부와 협의과정에서도 논란은 피하기 힘들 전망이다. 현재 협회 차원에서 파악한 입주기업 피해규모는 10조원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지만, 과연 정부가 이를 다 보전해줄 지는 미지수다. 협회 관계자는 "사람이야 몸만 빠져나오면 된다해도 현지에 남은 기계와 설비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정부가 과연 그 가치를 어느 정도나 인정해줄 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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