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4월 우리나라의 총선을 앞둔 시점에 유럽의 그리스는 데모가 절정이었다. 국회의사당 맞은 편 신타그마 광장에서 러시아워에 맞춰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77세 은퇴 약사는 그렇게 자살했다. 옆에 놓인 유서는 그리스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쓰레기통을 뒤져 먹기보다 나의 마지막 존엄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방법이다. 35년 동안 연금을 불입했지만 국가는 나를 저버렸다." 총을 쏘기 전 그는 "내 자식들에게 빚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소리쳤다. 이 사건으로 그리스의 무능한 정치권과 국민은 무언의 휴전을 합의했다.
우리 시대 국민연금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가? '사회복지'를 통해 '노후생활'을 보장하는 제도가 정답이다. 그러나 1988년 도입된 후 끊임없는 잡음과 소모전의 논란 중심에 국민연금이 있었다. 그 이면에는 숨길 수 없는 '기금고갈'이라는 불신이 존재한다. 사회에 첫발을 들여놓는 직장인들은 아직도 세금처럼 착각한다. 향후 40년까지는 안전하다고 떠들어도 '부과형' 제도로선 고갈시기가 앞당겨질 거라고 제대로 주장하는 사람도 없다.
국민연금은 '소득재분배'와 비주류 구성원들에게 국가가 베풀 수 있는 최고의 정책적 배려에서 태동된 것이다. '기금고갈'이라는 대명제 앞에서 찔금찔금식 내리는 처방은 먹히지 않는다. 2043년을 정점으로 2,415조원까지 늘어나는 국민연금.(또다른 시뮬레이션으로 보면 기금액과 고갈시기는 크게 당겨질 수 있다)
적어도 늘어나는 이 시기에 완벽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 출발점이 바로 박근혜정부가 들어선 지금이 최적이다.
그렇다면 국민연금은 어떤 방향으로 개혁의 틀을 잡아야겠는가. 우선 정책당국자, 사회구성원 모두가 '금융의 사고'가 아닌 '제도의 문제'로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 국민연금공단의 수장을 보면 물러난 관료들의 보상은혜 정도로 챙겨줬던가 아니면 공모형식을 빌어 금융권인사들이 차지했다. 이쯤에서 제도를 손질하기는 불을 보듯 뻔하다.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해서 1%라도 더 수익률을 올리는 것이 최대 목표였다. 또 그것을 최대 치적으로 홍보한다. 그러다보니 은행권 금리가 4.6%인데도 0% 수익률을 올리고서도 외국과 비교해서 선전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한 적도 있다. 주식이나 부동산투자는 수년 동안 수익률이 좋더라도 대내외 여건에 따라서 한 방에 날릴 수 있는 위험성도 있다. 소위 전문가들도 내놓는 처방이라곤 보험료율 인상 아니면 수급연령을 높이는 것뿐이다. 근본대책과는 거리가 멀다.
둘째, 개혁의 주체는 반드시 이해당사자들이 돼야 된다. 최근 매스컴 등에서 국민연금에 대해 언급하는 인사들을 보면 교수나 공무원이 다수다. 교수는 사학연금, 공무원은 공무원연금을 받는 사람들이다. 국민연금과 무관한 사람들이 국민연금을 멋대로 요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개혁의 틀을 잡아나가는데 이들을 배척하자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으로나 사회갈등치유 측면에서 보면 이해당사자들이 소외된 게임은 늘 미완으로 그려져 왔다.
셋째, 국가의 권한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 최근 경제민주화 관점에서 국민연금의 주주권행사를 강화하자는 여론이 있다. 이것은 또 다른 불행을 불러올 수 있는 위험성이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도 늦었지만 칠레의 연금개혁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군부독재 피노체트를 미화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깨끗한 군인정신으로 칠레경제와 특히 연금개혁에 대해선 큰 족적을 남겼다. 책임정치의 구현으로 당시 유학 중이던 젊은 피네라를 불러 연금개혁에 대한 전권을 주었다. 칠레연금개혁의 요체는 민영회사를 만들어 경쟁을 유도하고 국가는 감독만 하는 것이다.
연금의 민영화 담론은 꺼내기 어려운 자라의 목과 같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고갈이 반드시 다음 세대에 직면하게 됨을 감안한다면 그 최대공약수쯤은 마련해 나가야 한다. 다음 세대에 떠넘길 대재앙을 막는다는 차원에서 지금이 그 씨앗을 뿌리는 최적기임이 틀림없다. 현실은 '연금민영화' 담론이 평등개념을 무너뜨리는 시도가 아니라 '대국민디폴트선언'을 막는 출발점이 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때다.
김진태 한국정책홍보진흥회 진흥원장 ㆍ사회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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