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만 도쿄특파원 cmhan@hk.co.kr
침략전쟁 부인, 야스쿠니신사 참배 옹호 등 역사 왜곡 릴레이를 펼치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갑자기 화해 모드로 돌아섰다. “(야스쿠니를 둘러싸고) 어떠한 위협에도 굴하지 않겠다”며 주변국에 으름장까지 놓았던 그가 26일 중의원 내각위원회에서 “역사 인식에 관한 문제가 외교ㆍ정치문제화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며 한발 물러선 것이다.
잔뜩 갈등을 조장하다가 돌연 돌아선 것을 보면 그가 총리에 취임했다가 1년 뒤인 2007년 사임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당시 미국 하원은 일본 정부에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사죄하라고 요구하는 결의안 채택을 앞두고 있었다. 아베 총리는 이에 “위안부 모집의 강제성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다”며 “결의안이 통과되더라도 사죄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경 대응했다. 하지만 결의안이 끝내 미국 하원을 통과하고 일본 국내적으로도 그의 강경론에 비판이 쏟아지자 아베 총리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한 채 위안부 동원의 역사를 사죄했다. 그러자 보수 세력이 반발했고 그는 그 해 참의원 선거에서 패한 뒤 건강 문제를 이유로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당시 사죄로 인해 보수 세력의 신임을 잃었던 기억을 그는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아베 총리가 이번에 주변 국가를 자극한 것은 바로 그 아픈 기억을 떨치고 보수세력을 더더욱 결집하겠다는 교묘한 전략에 따른 것이다.
“(2006년 재임 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지 못한 것이 통한”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온 그는 이번 야스쿠니 춘계 예대제에 각료들은 보내고 자신은 빠졌다. 자신이 야스쿠니를 참배하지 않은 것으로 주변 국가를 배려했다는 명분을 얻었다고 그는 생각했다. 야스쿠니 참배 포기에 대한 우익의 반발은 주변 국가를 역이용하는 방법으로 눌렀다. 자극적인 발언으로 주변 국가를 자극하고 그것으로 ‘우익 본색’ 정체성을 보수세력에게 과시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실리를 챙겼다.
아베 총리가 2007년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일본 내 지지율이 높다는 점에서 그는 이번과 같이 치고빠지기식 전략을 언제든 다시 구사할 수 있다. 평화를 향해 함께 나아가야 할 시점에 공연한 도발을 일삼는 것은 시대착오적이고 퇴행적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