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불살생(不殺生)'을 가장 중요한 계율로 가르치는 비폭력과 평화의 종교다. 석가모니 붓다는 에서 "모든 것은 폭력을 두려워하고 평화로운 삶을 사랑한다. 이 이치를 자기 몸에 견주어 남을 죽이거나 죽게 하지 말라"고 설파했다. 대승불교의 경전 은 '보살이 되고자 하는 신자들은 전쟁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20세기 초 일본 불교는 전쟁을 정당화하는 '정신적 무기'가 됐다. 일본 선승들은 대부분 '검선일여(劍禪一如)'라는 미명하에 일본 군국주의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고승들은 자진해 군대의 나팔수로 나섰고, 극우파와 손잡고 천황숭배를 외쳤다. 살생을 금하는 계율은 철저히 무시됐다. "자비심으로 생명을 빼앗는 것보다 더 나은 보살행은 없다"(선승 난텐보), "열심히 싸워 적군을 모두 죽여야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심과 효행을 완벽히 수행하려면 선을 돕고 악을 벌할 필요가 있기 때문"(선승 야스타니 하쿠운)이라는 궤변마저 서슴지 않았다.
일제 군 수뇌부도 불교를 적극 활용했다. 병사들은 스님이 쓰는 공양 그릇을 본뜬 밥그릇으로 식사를 했다. 돌격을 앞둔 자살 특공대는 절에 가서 선을 수행하며 두려움을 잊었다. 패전 후 전쟁 책임의 죗값을 치르게 된 군 수뇌부는 죽음의 두려움을 또다시 불교를 통해 씻어냈다. 야스쿠니 신사에 위패가 보관된 A급 전범 도조 히데키와 관동군 사령관 도이하라 겐지는 전범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뒤 정토종으로 개종했다. 정토종은 누구든지 "아미타불"만 염불하면 서방정토에 다시 태어난다고 가르친다.
저자는 1961년 미국 감리교 선교사로 일본에 왔다가 불교에 귀의해 승려가 된 뒤 40여년 동안 불교가 군국주의와 유착한 이유와 배경을 분석하는 작업에 천착하고 있다. 이 책은 (1997)에 이은 그의 두 번째 보고서로, 붓다의 가르침에서 멀어진 일본 불교를 경책하는 장군죽비다. 붓다는 "전쟁터에서 죽으면 지옥에 떨어지거나 동물로 태어나리라"고 말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려는 저자의 메시지가 아닐까.
권대익기자 dkw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