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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고 싶은 책] 한·일 갈등 반복될 때 대담집 꺼내 생각한다 접점을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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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고 싶은 책] 한·일 갈등 반복될 때 대담집 꺼내 생각한다 접점을 찾을 수 있을까

입력
2013.04.26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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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 저 만나면 딱 두 가지 물어봅니다. (일제강점기) 일본이 잘못했느냐, 안 했느냐? 독도는 누구네 땅이냐?"

대학시절 특강을 했던 한 서울주재 일본 특파원은 강의 시작 무렵 이렇게 말했다. 특파원 15년 동안 이 난감한 질문에 대응하기 위해, 자신은 한국지식인들의 책을 읽기 시작했고 나름의 논리를 세워 대화해보려 하지만 접점을 찾는 것이 언제나 쉽지 않았다고 말이다. 마침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가 불거졌던 시기였다.

그 수업에서 충격을 받은 건 그 다음이었는데, 특파원은 내 책상에 놓인 를 보면서 "저도 임지현 교수 책은 나오면 꼭 찾아 읽는다"고 말했다. 한국인 대학생도 밑줄 그어가며 버겁게 읽는 책을 "꼭 찾아 읽는다"는 이 괴물 같은 외국인은 누굴까, 생각하던 찰나에 그는 "이 책이 어렵다면 을 추천한다"고 친절한 조언도 덧붙였다.

이 책은 임지현 한양대교수가 사카이 나오키 코넬대 교수와 '경계짓기로서의 근대를 넘어서'란 주제로 2년여에 걸쳐 나눈 대담을 정리한 것이다. 한국에서 동유럽사를 가르치는 임 교수와 미국에서 일본사상을 가르치는 나오키 교수는 한국인과 일본인이면서도 한국과 일본을 한 발 떨어져서 보기 좋은 자리에 있다. 이들은 이런 독특한 입장에서 제국과 식민지, 제국주의와 민족주의, 동양과 서양, 남성과 여성, 백인과 유색인 등 양국 국민들에게 '오만과 편견'을 유발하는 주제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근대 이후 인간의 정체성을 만드는 이런 '개념쌍'들은 서구에서 비롯돼 일본과 한국으로 퍼졌는데, 대립구조를 통해 서로를 비판하며 동시에 정당화한다. 두 사람은 이런 개념쌍들을 근대 일본과 한국에 대입하며 이 특파원이 받았던 저 난감한 질문들에 대한 의견을 나눈다. 일본의 제국주의 과거 청산 실패는 이를 비판하는 한국인의 민족주의를 강화한다. 무의식적으로 제국주의 과거에 대한 '유죄의식'을 가진 일본인들은 한반도의 저항적 민족주의, 식민지적 '희생자 의식'에 내재된 억압, 차별, 배제의 논리에 대해 눈감아버린다. 이렇게 강화된 한국의 '희생자 의식'은 배타적 민족주의를 정당화하고 자신들이 잠재적 제국주의로 나갈 위험성에 대한 성찰도 가로막는다.

두 지식인이 제시하는 탁월한 논리들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그렇다면 독도나 일본교과서 문제나 극우인사 망언에 입 다물고 사는 것이 '경계짓기 개념쌍'에 대항하는 최선의 방법인지를 고민하면 나 역시 이 특파원처럼 '접점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두 지식인이 맞선 민족, 국가, 성, 인종 등 주제는 사실 너무 관념적인 의식들이다. 이들은 오만과 편견을 유발하는 경계에 집요하게 문제제기 하지만, 견고한 경계들은 이런 공격을 받으며 끊임없이 방어망을 구축해왔다. 지금도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동북아 갈등들을 마주할 때면 이 대담집을 꺼내며 비틀거린다.

이 책을 다시 보게 된 건 최근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옹호 발언, 무라야마(村山) 담화 수정론 등에서 나타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역사인식이 연일 도마에 오르면서다. 이런 일이 있을 때면 우리는 언제나 상대국가의 배타적 민족주의를 헐뜯으며, 자신의 배타적 민족주의를 강화한다. 정치가 작동하는 실제의 세계에서 지식인들이 할 수 있는 건 말과 글을 나누는 것뿐이지만, 그 말과 글이 실제 세계의 방향키가 될 수는 있을 터다. "철저히 분석하고 발언하면 대부분 서로의 생각이 만나는 접점을 발견하게 된다"는 사카이 교수의 말은 희망적이다. 두 나라가 마음을 맞대고 서로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면, 갈등 해결책이 나오게 될까.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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