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교류협력 관계의 '최후 보루'로 여겨왔던 개성공단의 운명이 풍전등화의 상태에 놓이게 됐다. 북한이 지난 8일 개성공단 북측 근로자 전원 철수 담화를 발표한 데 이어 우리 정부가 25일 '북한이 실무회담 제안을 거부할 경우 중대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우리 측은 중대 조치의 일환으로 개성공단 내 남측 근로자의 철수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성공단은 가동 9년 만에 존폐의 갈림길에 서게 됐다.
아직까지 정부는 근로자 철수 및 개성공단 폐쇄 등을 언급하지 않고 있지만 남북 당국 간 회담을 통한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으면 정부로서는 어떤 식으로든 개성공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개성공단은 그 동안의 남북관계를 보여주듯이 2004년 첫 시범 가동 이후 9년 동안 남북교류의 상징적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그 기간에 통행 인원이 축소되고 우리 측 직원이 억류되는 등 적잖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개성공단의 출발점은 2000년 현대아산과 북한 측의 공업지구개발에 관한 합의서 채택이다. 이에 따라 한국토지주택공사가 현대아산, 북한과의 3자 합의를 통해 북 측으로부터 50년 간 토지사용권을 확보한 뒤 2004년 15개 회사가 입주계약을 체결하고 그 해 첫 제품을 생산했다. 남북 합작 개성공단 시대가 본격 개막한 것이다.
이후 개성공단은 123개의 기업이 입주하고 지난해 4억6,950만달러의 생산액을 기록할 만큼 지속적 성장을 거듭해왔지만 이명박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순탄치 않은 길을 걸어야 했다.
북한은 2008년 6월 우리의'3통(통신·통관·통행) 합의' 불이행을 주장하며 개성공단에서 우리 측으로의 인력·물자 통행시간 제한을 통보했다. 같은 해 12월1일에는 개성공단 상주 체류 인원을 880명으로 제한하고, 남북 통행 시간대와 통행 허용 인원 등을 축소시키는 '12ㆍ1조치'를 내렸다.
이후 2009년에는 탈북 책동과 북한 체제 비난 등을 이유로 개성공단 현대아산 직원인 유성진씨가 136일 동안 억류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결국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한 이후 유씨가 석방됐고 '12ㆍ1조치'도 해제되면서 일시적인 화해 분위기가 조성됐다.
그러나 2010년 북한의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우리 정부가 발표한 5ㆍ24 대북 제재 조치로 개성공단에 대한 신규 투자가 금지됐다. 이에 북한은 개성공단 등 육로통행 전면 차단을 경고하고 남북 교류협력 관련 군사적 보장 조치를 전면 철회하겠다고 발표했다. 같은 해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에는 개성공단 출입이 일시 금지되기도 했다.
잠잠하던 개성공단의 시련은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재연됐다. 북한은 지난달 27일 개성공단 입출경 채널로 사용된 남북 간 군 통신선을 차단한 데 이어 지난 3일에는 개성공단 통행을 차단하고 남측으로의 귀환만 허용했다. 이후 8일에는 김양건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가 개성공단을 방문한 뒤 담화를 통해 처음으로 북측 근로자 전원 철수 조치를 취했다.
개성공단 근로자들과 입주 기업들의 피해가 커지자 우리 정부는 지난 11일에 이어 25일 북한에 대화를 제의했지만 북한이 대화 제의에 응할지 여부는 미지수이다.
사정원기자 sj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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