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언제 짤려요? 강사가 학원에서 근무 안하고 왜 학교에 있어요?"
부산의 A초등학교 영어회화 전문강사(이하 영전강) B씨는 이 같은 학생의 물음에 할 말을 잃고 고개를 떨궜다. A초교에서는 정규 교원이나 기간제 교원, 무기계약직 교원은 녹색 명찰을 달고 다니고, 영전강은 흰색 명찰을 달고 다니도록 한다. 인턴교사, 원어민 보조교사도 모두 선생님이라고 불리지만 유독 자신만 'B강사''B씨'라고 불린다.
이명박 정부가 영어 공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2009년 도입한 영전강이 학교 현장에서 허드렛일꾼 취급을 받고 있다. 전국 초중고에 6,100명이 배치돼 있는 이들은 교사들이 떠넘기는 온갖 잡무를 도맡아 하고 차별에 시달리는 등 전문강사라는 이름이 무색할 지경이다.
2009년 부산의 C중에 배치받은 D(28)씨는 첫 학기 때 칠판이나 냉난방시설도 없는 창고에서 수업을 했다. 다음 학기에는 창고 공사가 진행돼 도서관에 칸막이를 치고 수업했다. 학생들이 "선생님, 우리는 왜 교실에서 수업 안 해요?"라고 물었지만 D씨도 대답을 할 수 없었다. C중의 영어 교사들은 업무분장표에 명시된 그들의 업무를 "담임도 안 맡으니 할 일 없지 않냐"며 D씨에게 떠넘겼고, 전화 받는 일부터 온갖 잡일을 다 시켰다. 하지만 재계약을 하려면 영어과 교사들의 평가가 70점 이상 나와야 하기 때문에 D씨는 군소리 없이 일했다.
전북 정읍의 E초등학교의 영전강 F씨는 몇 달 동안 한 학생을 가르쳐 시가 주최한 초등학생 영어 말하기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러나 지도교사에게 주어지는 상은 E학교의 정규 영어교원인 G씨가 가로챘다.
2009년 영전강 제도가 처음 도입될 때만 해도 전문성 있는 교사들이 초빙됐다. 시도교육청이 3차에 걸친 시험을 치러 영전강을 선발하고 자격을 검증한 후 각 학교에 배치했다. 영전강 73.4%가 교원자격증이 있고, 영어교육 전문가 과정(TESOL) 자격증을 보유하거나 토익 950점 이상의 고득점자들도 포함됐다. 또 2010년 경기도교육청이 의뢰한 '영어회화전문강사 성과 분석 연구'에 따르면 "영전강이 가르치는 영어가 재미있다", "말하기ㆍ듣기가 향상됐다"는 학생 응답이 각각 75.8%와 58.2%로 나와 교육효과도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2011년부터 영전강 선발이 학교장에게 위임되면서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강사들이 채용되기 시작했고, 부당한 대우도 부쩍 늘었다. 고선경(43) 한국초중등영어회화전문강사협의회 회장은 24일 "계약권을 쥐고 있는 교장뿐만 아니라 영어교사들 눈치까지 봐야 한다"고 말했다. 교대 출신은 지원할 수 없게 하면서 교사들 사이의 갈등도 불거졌다. 영전강들은 학교에서 기간제 교원보다 더 못한 처지라고 하소연했다.
더구나 4년 이상 한 학교에서 재계약을 연장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2009년 채용된 영전강 526명은 올해 8월 말 해고될 처지에 놓였다. 교육부는 학교를 옮겨야 하는 강사 명단과 영전강을 필요로 하는 학교 명단을 공개해 영전강의 학교 이전이 원활히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강사들은 무기계약직 전환을 통해 고용안정을 확보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고 대표는 "다시 교육청별로 강사의 전문성도 검증하고 이에 걸맞게 신분과 처우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아람기자 onesh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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