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가옥과 오래된 길이 남아 있는 북촌 화동 일대는 서울에서 한가롭게 걸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동네입니다. 차가 다니기 불편하다는 이유로 언덕을 마음대로 깎아야 되겠습니까."
지난 22일 오후 5시 서울 종로구 북촌의 '화동고갯길 개선사업'과 관련한 주민 간담회에서 화동 주민 대표 5명은 사업 개요에 대한 구청장의 설명이 끝나자 마자 우려를 쏟아냈다. 종로구청이 북촌 고갯길 구간의 최고점을 약 1m 깎아 총 60m 길을 완만하게 하는 공사를 진행하겠다고 발표한 데 대한 반발이다. 한 주민은 "동네 곳곳에 옛 정취가 남아있어 이를 즐기는 시민들이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고갯길을 오르는 것"이라며 "경사가 있어 불편하니 깎으면 그만이라는 건 이기적인 발상"이라고 반대목소리를 높였다.
서울 종로구 정독도서관에서 재동초등학교로 가는 짧은 언덕구간인 화동 고갯길은 지난해 서울시가 주민이 사업선정을 결정하는 주민참여예산제도를 도입한 뒤 종로구 주민 스스로 정비 사업 추진을 결정한 10곳 중 한 곳이다. 예산 3억 6,000만원이 배정돼 지난 2월 종로구청이 사업 추진을 예고했지만 고갯길의 화동, 삼청동 주민이 제동을 걸고 나서면서 화동 고갯길 개선 사업 반대 서명자가 현재 900여명에 달한다.
화동 고갯길 인근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는 장계현씨는 "화동에서 30~40년 산 주민들은 조그만 불편을 감수하고 언덕과 더불어 느리게 살아왔다"며 "도로가 정비돼 차량 통행이 많아지면 북촌 전체 땅 값이 올라간다고 생각하는 일부 주민 주장이 실제 사업으로 이어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애초 고갯길 개선 사업을 제안했던 이는 북촌 지역 시민단체 '북촌마을가꾸기회'다. 눈이나 비가 오면 통행이 불편하고 교통사고 위험이 있다는 민원을 수렴해 주민 4,500여명의 서명을 받아 예산을 따냈다는 것이다.
권대성 북촌가꾸기회장은 "일부 반대주민의 주장과 달리 화동 고갯길을 완전히 평지로 만들겠다는 게 아니라 경사를 완만하게 해 통행 불편을 줄이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박원순 서울시장도 이달 초 페이스북에 "화동 고갯길이 없어질 위기에 처해 안타깝다"고 우려를 전하면서 주민 대립에 가세했다. 박 시장이 종로구청장에게 사업재검토를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일부 당사자들이 결사 반대하고 나서면 아무리 주민참여예산제로 결정됐다고 해도 무조건 강행할 수는 없지 않겠냐"고 말했다. 구청은 일단 사업을 보류하고 주민들의 의견을 더 수렴할 계획이다.
글ㆍ사진=손효숙기자 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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