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5일 북한에 당국간 실무회담을 제의하면서 대화를 거부할 경우 반대급부로 '중대 조치'를 공언하는 배수진을 쳤다. 정부는 과거 우리측 대화 제의에 좀처럼 등장하지 않던 격한 표현인 '중대 조치'를 쓰면서 북측의 회신 기한을 '26일 오전까지'로 못박으며 압박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이에 따라 실무회담 제의 배경과 중대 조치 내용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정부 안팎에서는 개성공단에 체류 중인 남측 근로자를 철수시키는 것 외에 중대 조치라고 내세울 만한 카드가 마땅치 않다는데 대체로 의견이 일치한다. 정부가 북한을 향해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서는 사실상 개성공단 폐쇄를 감수하는 파국적 상황까지 각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북한 내부에서는 최근의 한반도 위기 국면에서 개성공단을 계속 운영하는 것에 대해 군부가 완강히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공단 운영을 총괄하는 북한 중앙특구개발총국은 지난 3일 통행제한 조치 이후 개성공단관리위원회를 통한 우리 측과의 비공개 접촉에서 개성공단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내부 강경 기류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정부가 이날 밝힌 중대 조치는 단순히 공단 정상화를 촉구하는데 그치지 않고 북한 군부를 겨냥해 근본적인 태도 변화를 요구하는 복합적인 메시지가 담겼다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정부가 한발 더 나아가 개성공단 폐쇄를 직접 선언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향후 상황이 진정 국면으로 전환돼 공단 가동을 재개하려 해도 북 측이 책임론을 들고 나오면 발목을 잡힐 수 있기 때문이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공단 폐쇄는 남북관계 판을 아예 깨자는 것"이라며 "미국, 중국이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그런 위험한 도박을 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 미국, 중국 간 외교장관 회담 등 고위급 대화채널이 활발하게 가동돼 북한의 위협에 대한 공조를 강화하는 추세라는 점도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남측 근로자 철수 카드는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이날 현재 공단에 남아있는 우리 측 근로자 176명은 식자재 부족으로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 처해 있다. 김형석 통일부 대변인이 이날 성명에서 최소한의 인도적 조치를 촉구하며 "마냥 기다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절박함을 토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공단 체류 근로자의 신변 안전을 최우선 과제로 강조하며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다만 정부는 중대 조치를 실제 행동에 옮기는 것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 대화 제의에 북측이 조속히 응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고, 중대 조치는 그 이후에야 고려할 만한 문제라는 입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개성공단 상황이 워낙 심각해 당국이 나서야 하는 시점이기 때문에 당국간 대화를 제의한 것"이라며 "중대 조치 부분은 모호하게 남겨두려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26일 오전까지 대화에 응하지 않더라도 당장 중대 조치 수순을 밟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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