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재정위기로 유럽연합(EU)의 신뢰도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EU 위기론마저 나온다.
24일 가디언에 따르면 EU 여론조사기관인 유로바로미터가 지난해 말 독일 등 6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EU 신뢰도를 조사한 결과 'EU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신뢰한다'보다 두 배 이상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대상은 EU를 주도하는 회원국인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폴란드 등 6개국이다. 이들 국가의 총인구는 3억5,000만명으로 유럽 전체 인구(5억명)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싱크탱크인 유럽외교관계이사회(ECFR)는 "전통적으로 친EU 성향이 강했던 스페인 독일 이탈리아 등에서 EU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크게 늘어났다"며 "경제위기로 국민의 경제상황이 악화했을 뿐 아니라 국가 미래에 대한 정치적 불안감도 증폭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경제위기는 채무국과 채권국 모두에 EU에 대한 불신을 안겼다. 혹독한 긴축정책에 시달리는 스페인에서 'EU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국민은 2007년 23%에서 지난해 72%로 급증했다. 'EU를 신뢰한다'는 국민은 20%에 그쳤다. 역내 경제규모가 가장 큰 독일에서도 'EU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한 국민이 2007년 36%에서 지난해 59%로 크게 늘었다.
EU 국민의 EU체제 불신이 국가주의를 유발해 결국 EU 통합을 저해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호세 마누엘 바호주 EU집행위원장은 23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실업과 불확실성, 불평등으로 '유럽의 피로'가 나타나고 있다"면서 "이 틈을 타 '유럽의 꿈'을 위협하는 포퓰리즘의 망령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탈리아에서는 반유로를 외치며 EU회의론을 주장하는 제3당 오성운동이 인기를 끌고 있다. 독일 싱크탱크인 베텔스만재단의 아르크 데 게우스 대표는 "경제위기로 EU의 입김이 커지면서 각국은 자국의 민주주의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며 "이런 현상이 악화하면 유럽 내 국가주의와 포퓰리즘이 득세하면서 EU 통합은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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