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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아무 일도 안 한 게 가장 잘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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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아무 일도 안 한 게 가장 잘한 일

입력
2013.04.25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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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부터 SNS를 시작했다. SNS라는게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통해서 마음이 통하고 뜻이 맞는 사람끼리 소소한 일상이나 자신의 의견을 주고받는 장이 되다 보니, 아무래도 영화하는 사람들과 혹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자주 의견을 교류하게 된다.

지난해 영화를 제작하면서 주말이면 항상 촬영장에 갔다. 촬영장에 가면서 영화현장도 둘러보지만 남는 시간엔 동네 온천도 가고, 시장도 가고, 맛집도 가고 하는 사소한 일상들을 SNS에 올렸다. 영화투자사에 근무하는 한 후배가 "형 글을 읽으면 일반인들이 영화 만드는 게 힘든 건 하나도 없고, 낭만적인 것으로만 오해할 것 같다"고 볼멘소리를 한 일이 있다.

영화를 만든다는 건, 물론 다른 일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매우 고통스럽고 어렵고 힘들다. 개성이 강하고 자기 주관이 뚜렷한 배우와 감독 그리고 스태프들(우리는 스스로를 모두 정신병자들이라고 한다)이 어우러져서 힘을 모아야만 완성할 수 있기에 다른 무엇보다도 사람들과의 관계 조율이 제작자의 가장 주된 역할이기도 하다. 근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개성 강한 사람들의 조율자로서 그리고 작품의 완성도와 제반 행정적인 문제의 책임자로서 노심초사하며 지냈다. 다행히도 하늘이 도와서 기대한 것보다 더 많이 사랑 받고 주목 받았다.

영화가 끝나고 영화관련 잡지사와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여러 가지 영화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고 난 담담하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인터뷰 말미에 기자가 예상치도 못한 돌직구를 던졌다. "제작자로서 당신이 이 영화('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가장 잘한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라고, 난 잠시 생각에 빠졌다. 감독을 잘 지원한 것? 아니면 연기 잘하는 배우를 캐스팅 한 것? 그것보다 실력 있고 열정적인 스태프들을 구성한 것? 등등 생각하다가 불현듯 나도 모르게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잘한 건 아무 일도 안 한 게 가장 잘한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기자는 의아해했다. 아무 일도 안 한 게 가장 잘한 일이라는걸 금방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난 그에게 솔직히 털어놓았다.

지난 20여년 간 영화 하면서 난 제작자로서, 프로듀서로서 너무 많은 일을 하려고 하였다. 내가 감독보다 더 연출자로서의 식견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연출에도 관여하려 하였고, 연기자로서의 자질도 없으면서 연기자를 가르치려 들었고, 전문스태프보다 더 알지 못하면서 이러쿵저러쿵 훈수를 두었다.

이번엔 그간의 나의 이런 오만과 독선을 없애려고 노력했다. 난 촬영장에 내려갈 때마다, 혹은 제작회의를 주재할 때마다 매일같이 기도했다. '하나님, 제발 제가 아무 일도 하지 않게 해달라'고.

대본이 시커멓게 변색되도록 고민한 배우들과, 잠자는 시간도 줄여가면서 전체를 조율하는 감독과 묵묵히 자신들의 파트에서 최선을 다하는 스태프들은 자신의 맡은 바 일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나는 그저 그들을 후원·지지하고, 그들이 자신들의 역량을 펼칠 수 있게 분위기와 상황만 조성해주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무시하고, 내가 나서서 무언가를 하려는 순간 우리가 목표로 하는 지점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기에 제발 아무 일도 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살면서 우리는 너무 많은 일을 하려고 한다. 특히 책임을 맡은 사람들이 더 조급해하고 더 못미더워하고 자신이 없으면 안 되는 양, 큰일이라도 나는 양 노심초사하게 된다. 그러나 결국 그런 마음과 그런 행동이 큰일을 그르치고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걸 실패한 후에야 깨닫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번 영화에서 가장 잘한 일이 "아무 일도 안 한 것이다"라고 말하는 거다. 과연 이게 영화 만드는 일만 이럴까? 적게는 우리 같은 중소기업, 크게는 나라경영도 아마 다르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정말 대의를 위해서 또 모두를 위해서 놀고 쉬는 것이니, 우리 영화 동료들이 이런 나를 보더라도 비난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정말 힘들고 고통스럽게 노는 거다.

아무 일도 안 하다 보니 해외 출장 중 사무실에 전화해서 "별일 없지?"라고 전화하면 동료들이 생기발랄한 목소리로 "예, 아무 일도 없어요"라고 한다. 나 없이도 이젠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게 너무 불안해진다. '도대체 난 뭐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젠 무슨 일이건 좀 해야 하나?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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