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엄마는 동물로 표현하면 앵무새, 왜냐하면 나만 보면 앵무새처럼 낄낄대서. 색으로 표현하면 파란색, 왜냐하면 파란 파도처럼 인자하셔서. 감촉으로 표현하면 고무, 왜냐하면 고무처럼 나한테 말을 말랑말랑하게 해서. 날씨로 표현하면 비, 왜냐하면 내 나쁜 마음을 깨끗이 씻겨 내리게 해서. 맛으로 표현하면 수박바 맛, 왜냐하면 애니팡을 할 때 콤보를 올려줘 내 기분을 달달하게 해줘서. 꽃으로 표현하면 수국, 왜냐하면 수국처럼 아름다우셔서.
아이가 학교에서 만들어 온 '우리가족 이야기' 가운데 엄마에 대한 구절이다. 도화지 몇 장을 반으로 접고, 간단하게 중심 부분에 몇 개의 절개선과 접는 선들을 넣고 그림으로 꾸몄다. 페이지를 넘기면 입체적으로 얼굴 형상이 나오게 하고 그 옆에 글을 적어 놓은 것이다. 가족에 대한 느낌과 감정을 동물, 꽃, 날씨 등 다른 사물이나 개념에 비유한 것도 신선하고, 단순한 평면이 아니라 입체로 제작되니 더 실질적으로 와 닿아 재미있다.
일종의 '팝업 북((Pop-Up Book)'이라는 것인데, '팝업'이 '튀어나오다'라는 단어인 것처럼, 책을 펼쳤을 때 3차원 입체로 그림 등이 튀어나오고 덮으면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책이다. 이차원적으로 평면상에서 이미지 변환을 가져오는 무버블 북(Moveable Book)과는 조금 다르다. 생일카드를 펼치면 케이크가 나타나고, 크리스마스카드를 열면 캐롤송과 함께 화려하게 장식된 트리를 보아왔던 것처럼, 입체 시각미술로 만들어진 책을 팝업 북이라고 한다.
이러한 팝업 형태는 오감 체험을 통해 감성표현을 극대화하고 학습효과를 높일 수 있는 유아·아동 서적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팝업 북을 어린이들만이 좋아하고 어린이들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평면의 종이를 열었을 때 벌떡 일어나 내 눈앞에 펼쳐지는 3차원의 세상에 흥분하지 않는 어른이 있을까. 동화 속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도록 꾸며진, 화려한 색상 정교한 그림, 섬세하게 이루어진 조형의 감각에선 장인정신마저도 느껴진다.
평면에서 입체로 전환되는 놀라운 순간을 마술처럼 보여주는 팝업 북의 역사는 사실 오래되었다. 15세기 중세 이전에 천체의 움직임과 해부학, 성직자를 위한 달력 등 종교, 과학, 기술서 등에 이용되다가, 19세기 영국에서 어린이를 위한 책으로 큰 인기를 얻은 것이다. 그 인기는 계속되었고 현재 팝업 북에서 보여주는 팝업 아트는 단순히 그림책을 벗어나 샹들리에나 건축모형, 방송무대 등에도 활용되는 등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시점이다.
사실 책 자체가 갖는 무게감, 색깔, 질감, 냄새 등의 물질적 특성에 시각적 환상을 심어주는 팝업 북은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적 감성이라는 디자인 문화 트렌드에 가장 잘 접목될 수 있는 분야이다. 뉴욕타임즈의 칼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먼은 그의 책 에서 우리를 디지털에 강한 '사이버 부족'이라 하고, 디지털 혁명이 가장 급속하게 벌어진다고 했다. 하지만 디지털 가속화의 반면에 사람들의 아날로그적 감성추구 또한 거세게 번지고 있다.
사람의 기본적인 행복을 기반으로 하는 휴먼디자인, 감성과 창조와 체험을 가능하게 하는 팝업 북은 큰 의미를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팝업 북은 주로 외국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출판을 하더라도 번역 출판물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출판사나 기획자들 그리고 일러스트 작가들이 좀 더 효율적인 협업을 한다면, 예술적 가치가 높은 팝업 북이 제작될 것이며, 작가에게는 새롭게 예술성을 발휘할 수 있는 장르가 만들어 질 것이다.
또한 전통적인 종이책이 사라지고 있는 시점에 팝업 북과 같은 아름다운 종이책을 보면서 우리의 아날로그적 감성들이 디지털 문명 발전과는 또 다른 방향으로 키워질 수 있으면 좋겠다. 팝업 북을 통해 오감을 통한 문화의 향기 속, 상상너머 상상을 꿈꾸는 행복을 만나길 희망한다.
안진의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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