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감독이 본 문경은, 선수단 장악하는 능력 탁월모래알 SK 똘똘 뭉치게 만들어… 스타의식 없던 모범생 제자문 감독이 본 유재학, 상대선수 습관까지 꿰뚫어 대비한 수가 아닌 만수를 배웠죠… 체격은 작지만 참 듬직한 스승님
"서로 감독상 하나씩 주고 받으니 기분 좋네요."(유재학 모비스 감독)
"감독님, 내년엔 우리 팀이 우승하면 안 될까요?"(문경은 SK 감독)
유재학(50ㆍ82학번) 모비스 감독과 문경은(42ㆍ90학번) SK 감독은 의 좋은 사제지간이다. 1991년 연세대에서 3년간 선수와 코치로, 그리고 2001년 SK 빅스에서 감독과 선수로 3년 동안 호흡을 맞췄다. 이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올해 스승과 제자가 지휘봉을 잡고 챔피언 결정전에서 지략 대결을 펼쳤다. 결과는 스승 유 감독의 승이었다.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고 달콤한 휴식 중인 유 감독과 문 감독이 24일 서울 반포동 JW매리어트호텔에서 만나 유쾌한 대화를 나눴다. 유 감독은 "푹 쉬고 싶은데 우승에 따른 일정을 소화하느라 바쁘다"며 행복한 비명을 질렀고, 이를 부럽게 바라보던 문 감독은 "빨리 다시 시즌이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질투 섞인 말을 했다.
이에 유 감독은 "우리 팀은 전력이 약해지니 너무 신경 쓰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문 감독은 "유 감독님도 2005~06 시즌에 정규리그 우승을 하고 챔프전에서 삼성에 내리 4연패 한 뒤 이듬해 곧바로 우승을 했으니 우리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며 웃었다.
"시즌 초 챔프전서 만나자고 했죠"
승부의 세계는 냉혹하다. 한 명은 웃고, 한 명은 운다. 게다가 이번 챔프전은 사제지간의 맞대결로 관심을 모았다. 그런데 너무 일방적이었다. 유 감독이 이끄는 모비스가 내리 4승을 따냈다. 문 감독의 SK는 안방에서 1, 2차전을 내준 것이 뼈아팠다.
유 감독은 "개인적으로 이번 챔프전은 다른 때와 달리 즐겁고 부담이 덜했다"며 "누가 이기든 둘 중 한 명이 우승할 수 있으니 좋은 일 아닌가"라고 말했다. 문 감독 역시 "내가 부담이 훨씬 덜했다"면서 "유 감독님이 시즌 초반에 저녁을 사주면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챔프전에서 만나고 싶다고 했는데 진짜 이뤄졌다. 축제를 즐기며 치른다는 마음이었다"고 했다.
유 감독은 제자의 지도력을 높이 샀다. 그는 "문 감독이 제일 잘한 것은 선수단 장악이다. 전술은 두 번째다. 전술을 쓰려면 선수들을 내 선수로 만들어야 한다. 그 동안 SK가 좋은 선수를 보유하고도 성적을 못 냈던 이유이기도 했는데 문 감독이 해냈다"고 칭찬했다.
문 감독은 "챔프전을 통해 유 감독님에게 한 수가 아닌 만수를 배웠다. 김민수가 슛을 쏠 때 오른발을 앞으로 내미는 습관, 김선형이 오른쪽 돌파를 좋아하는 것을 모두 꿰뚫고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직 멀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대학-프로에서 6년 간 한솥밥
문 감독은 94년 연세대 시절 대학팀 최초로 농구대잔치에서 우승한 이후 곧바로 코치였던 유 감독을 가장 먼저 껴안았다. 뒷풀이 장소에서는 서로 머리에 있는 술을 모두 쏟아 부으며 기쁨을 만끽했다. 매일 동거동락 했기 때문에 허물없이 가까웠다.
문 감독은 "대학 때 유 감독님과 잠도 같이 자고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 보냈다. 감독님한테 맞은 적은 없다"고 웃었다. 유 감독은 "코치가 해야 될 일은 최희암 감독님의 보조를 맞추는 것이었다. 선수들이 나를 무서워하는 건 아니고 어려워했다. 이것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나 문 감독만큼은 예외였다.
이들은 대학에서 최고의 성과를 거둔 뒤 2001년 프로에서 재회했다. 삼성에 있던 문 감독이 트레이드로 SK 빅스 지휘봉을 잡고 있는 유 감독의 품으로 왔다. 당시 유 감독은 초짜였고, 문 감독은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였다.
유 감독은 "문 감독이 우리 팀으로 오기 전 삼성에서 오전에는 무조건 재활을 하고 오후에만 훈련을 한다고 들었는데 같이 있는 동안에는 오전 오후 야간 훈련을 다했다. 고참이자 스타가 솔선수범을 하니 팀에 좋은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이에 문 감독은 "사실 삼성에서 좀 게을렀던 것 같다. 지금 감독 자리에 있으니 선수들이 나태하거나 게으른 것이 다 보인다. 내가 원해서 갔고 제2의 농구인생을 펼치고자 하는 목표 의식이 뚜렷해 정말 열심히 했다. 그 때 근육이 정말 람보처럼 됐다"고 강조했다.
문 감독은 유 감독의 지도를 받으면서 "체격은 작지만 정말 듬직함이 느껴진다. 작전 타임을 하고 나면 뭔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현재 SK에서 적성 농구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선수 때 유 감독님에게 배운 부분"이라고 했다.
이들은 어쩌면 감독과 선수로 함께 우승을 맛볼 수 있었다. 2003~04 시즌 한 때 김승현과 마르커스 힉스가 버티는 오리온스와 함께 공동 선두까지 달렸지만 뒷심 부족 탓에 공동 3위에 머물렀다. 또 6강 플레結의좆【??LG에 졌다.
유 감독은 "LG가 막판에 외국인선수 1명이 5반칙 퇴장으로 나갔다. 우리는 외국인 2명 모두 있었는데 둘 다 센터였다. 내가 큰 실수를 했다. 2명을 다 활용하면 공격에서 큰 도움이 됐는데 너무 수비만을 생각해 1명만 내보냈다. 큰 선수가 내외곽을 넘나드는 송영진을 막기 힘들 것이라는 잘못된 판단이었다. 큰 실수를 통해 초짜 감독으로서 많이 배웠다"고 떠올렸다.
아시안게임 감독-코치로 다시 뭉치나
유 감독은 챔프전 우승으로 남자농구 대표팀 사령탑을 맡는다. 의무는 아니지만 챔프전 우승 팀의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는 관례에 따른 것이다. 매년 대표팀 감독이 바뀔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에 방열 대한농구협회장은 최근 "올해 8월 아시아선수권대회를 치르는 대표팀 감독에게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까지 맡긴다는 것이 기본 방침"이라고 했다. 이는 방 회장의 개인 의견일 뿐이다.
만약 방 회장의 의견이 받아들여질 경우 유 감독은 대표팀을 아시안게임까지 맡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 농구는 세계 무대는커녕 아시아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러나 유 감독은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 성과를 이뤘다.
이에 대해 유 감독은 "프로라서 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대표팀 감독이면 아무래도 소속 팀에 소홀해진다. 일단 제일 먼저 구단과 상의해볼 필요가 있다. 국가가 부르면 크게 생각해 성실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민스러운 표정이 역력한 유 감독과 달리 문 감독은 부러움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문 감독은 "그럼 저 보조 코치라도 써줄 거죠"라며 "프로농구 감독 중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는 저밖에 없어요"라고 강조했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이들이 감독과 선수로 함께 이루지 못한 우승 꿈을 감독-코치로 하모니를 이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 이후 12년 만에 아시아 정상 등극을 이끌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문경은(왼쪽) SK 감독과 유재학 모비스 감독이 24일 서울 반포동 JW매리어트 호텔에서 밝은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지섭기자 onion@hk.co.kr
김지곤기자 jgkim@sp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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