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가 NC 다이노스를 상대로 개막전 이후 13연패의 지긋지긋한 연패 사슬을 끊었다. 오죽했으면 프로야구 감독 생활을 20여 년 넘게 한 김응용 감독마저 눈시울을 붉히며 '평생 잊지 못할 승리'라고 했을까. 김응용 감독은 KIA(옛 해태)와 삼성에서 역대 최다인 10번이나 정상에 오른 '우승 청부사'다.
당초 한화는 NC와 더불어 시즌 개막전부터 꼴찌 후보로 꼽혔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한화의 추락은 예상보다 심각했다. 올 시즌 700만 관중 돌파를 예고한 프로야구 전반의 흥행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물론 질적 하락까지 부추겼다는 비난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팬들은 한화를 '동정'했다. 연패가 거듭될수록 홈팬들 뿐 아니라 전 야구팬들의 동정 어린 시선을 받았고, 다른 구단이나 선수들 등 동종 업계로부터 연패 탈출의 성원을 받기도 했다.
스포츠 선수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바로 '연패'다. 연패에 빠지면 전력적인 변수 보다는 자신감이 상실되면서 고교 수준의 어처구니 없는 실책이 나오기도 한다. 연패를 하다 보면 꼭 이겨야겠다는 마음이 오히려 부담감을 키우고 부담감이 실책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설상가상 상대 팀들의 승수 쌓기 제물로 인식되면 장기적으로는 리그를 운영하기도 어려워진다. 국내 프로스포츠에서 역대 최다 연패는 프로농구 동양 오리온스가 98~99시즌 기록한 32연패다.
확실한 에이스가 있는 팀은 그나마 낫다. 야구가 투수 놀음인 만큼, 연패를 막을 확률이 높아진다. 이번 시즌 초반 김응용 감독이나 한화 팬들은 LA 다저스에서 활약하는 류현진의 존재가 얼마나 아쉬웠을까. 비록 류현진이 지난 시즌 9승 밖에 올리지 못했지만 한화에서만 7년 동안 98승을 올린 에이스였다. 류현진이 등판하는 날이면 야수들도 자신감과 힘이 났을 것이다.
연패에 빠진 팀들은 고사를 지내기도 하는 등 분위기를 반전시킬 다양한 묘수를 찾기 위해 골몰할 수 밖에 없다. 한화는 '농군 패션'(유니폼 하의를 무릎 근처까지 잔뜩 끌어 올리는)도 해보고 삭발도 단행했다. 삭발은 팀의 분위기를 바꾸는 대표적인 방법이다. 전문가들은 삭발 효과를 "연패를 끊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팀 동료들과 팬들에게 보여주는 시각적인 측면이 강하다"고 설명한다. 1987년 청보 핀토스는 팀이 연패에 빠지자 심리학자를 불러 선수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는 등 심리적 접근을 시도하기도 했다.
지난 시즌 프로배구에서 연패로 마음 고생을 했던 신춘삼 전 KEPCO 감독은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연패중인 팀의 특징이 있다. 공격수는 수비수를 탓하고, 수비수는 공격수를 탓하는 등 서로 '네 탓이오'가 되면 팀은 망가진다"고 했다.
신 전 감독은 연패에 대처하는 방법이 두 가지라고 했다. 전력은 강한데 선수들이 나태해서 질 경우 당근 보다는 채찍이 필요하고, 전력이 떨어진다면 질책보다는 격려가 바람직하다는 견해다. 신 감독은 "선수들을 너무 압박하면 역효과가 나온다. 심리적으로 위축된 선수들을 코너로 몰아서는 안된다"면서 "연패 탈출에 대한 얘기를 꺼내지 말고 잘 한 점을 칭찬해주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패는 당해 본 감독 만이 그 심정을 안다. 프로 감독들은 연패가 곧 진퇴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프로 감독이나 선수들은 팀 성적과 개인 성적으로 평가 받는다. 즉 연봉 고과 산정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프로야구 감독들은 연패를 싫어하지만 연승도 그리 달갑게 생각하지만은 않는다. 그저 3연전으로 진행되는 시리즈마다 '위닝시리즈(2승1패)'로 마감하면 대만족이라고 말한다. 3연전에서 2승1패씩만 거두면 정규 리그 우승은 그다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128경기를 치러야 하는 프로야구에서 연패는 안고 가야 할 업보다. 연패를 지혜롭게 헤쳐 나오는 팀 만이 진정한 강 팀이 될 수 있다.
여동은 스포츠부장 dey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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