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늦게 나마 빚을 갚고자 합니다."
강원 평창군 대화면 대화리에 사는 이태명(87)씨는 지난해 9월 추석을 며칠 앞두고 자신의 집 거실에서 음료수 상자를 발견했다. 상자에는 편지와 함께 현금 100만원이 들어있었다. 발신인은 같은 마을에 사는 위경춘(60)씨. 그가 보낸 봉투는 다름 아닌 1980년 어려운 형편으로 내지 못했던 월세 21만원을 지금의 가치로 환산한 상환금이다. 위씨는 편지에 "그때 가치에 상응하지는 못하더라도 너그럽게 용서하는 마음 베풀어 주시길 바란다"고 적었다.
위씨는 1980년 이씨가 대화리에서 운영하던 압강상회 건물 일부를 임대해 오토바이센터를 운영했다. 당시 그는 수입이 신통치 않은 데다, 아내의 지병까지 겹쳐 3개월치 월세 21만원을 내지 못한 채 가게를 접어야 했다. 이후 그는 보일러와 상수도 수리 일을 하면서 어렵게 생계를 꾸렸다. 그래도 독거노인에게 먼저 수리비를 요구한 적이 없을 정도로 불우이웃을 보듬는 따뜻한 사람이라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위씨에게 밀린 월세는 30년 동안 마음의 짐으로 남았다.
이씨는 빠듯한 위씨의 사정을 잘 알기에 선뜻 돈을 받을 수 없었다. 봉투를 돌려보냈지만 위씨로부터 "몇 해 전 세상을 떠난 아내가 압강상회에 밀린 월세는 꼭 갚으라는 말을 남겼다"는 말을 듣자, 그 무렵 이씨가 화장실을 손봐줬던 비용 25만원만 받기로 하고 75만원을 다시 돌려줬다. 이씨는 "세상이 각박하지만 위씨와 같은 사람이 있어 아직 세상은 살만한 곳인 것 같다"고 웃었다. 이들의 훈훈한 사연은 최근 이씨가 대화면사무소를 방문해 이를 알리면서 알려졌다.
박은성기자 esp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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