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국 외교장관이 24일 베이징에서 만났다. 올해 양국의 새 정부가 출범한 이후 열린 첫 고위급 회담이다. 특히 일본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망언과 각료, 정치인들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로 주변국을 자극하는 상황에서 한중 양국이 공동보조를 취함에 따라 일본에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효과를 거뒀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병세 외교장관과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일본의 우경화에 따른 동북아 정세 변화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다만 윤 장관은 회담 후 '일본에 대한 한중 양국의 공조방안을 논의했느냐'는 질문에 "공조나 공동으로 대응할 문제는 아니다"고 짧게 답했다. 구체적인 논의는 없었다는 얘기다. 양국 장관이 당초 5월 말로 예정했다가 무산된 한중일 정상회담의 개최시기를 외교채널을 통해 계속 협의하기로 한 것도 일본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겠다는 의미다.
정부 관계자는 "일본의 우경화는 이번 회담의 메인 의제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며 "양국 장관이 일본 문제를 거론했겠지만 무슨 대책을 내놓거나 할 정도는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중 양국 장관이 만나 일본의 최근 동향을 거론하며 심각성을 공유한 것만으로도 외교적으로는 상당한 압박이 될 수 있다. 국제사회의 의무를 저버리는 북한과 달리 일본은 정상국가이고 협력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이날 회담은 오찬을 겸해 당초 2시간으로 예정됐지만 추가로 1시간을 훌쩍 넘겨 3시간 이상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 소식통은 "북한의 도발위협이 엄중한 상황에서 한중 장관이 일본 문제를 대화 테이블에 꺼냈다는 자체만으로도 이례적인 일"이라며 "일본의 행동변화를 촉구하는 무언의 메시지인 셈"이라고 말했다. 윤 장관은 이날 출국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아베 총리의 침략 부정 발언에 대해 "책임있는 지도자라면 올바른 역사인식을 갖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회담에서 윤 장관이 북핵문제의 해결방안으로 제안한 민관 합동의 1.5트랙 협의채널인 '한미중 전략대화' 구상도 이 같은 기류와 맞닿아 있다. 당초 박근혜 대통령이 정체된 6자회담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대선과정에서 제시한 공약이기는 하나 기존 6자회담 구도에서 한미일 공조체제를 강조했던 것에 비하면 일본을 사실상 배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윤 장관은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최근 한국, 중국을 잇따라 방문한 사실을 언급하며 "한중미간 고위 레벨에서 전략적 소통이 가동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왕 부장도 이에 공감하며 전폭적인 지지 입장을 밝혔다. 왕 부장은 박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에 대해서도 긴밀한 협력을 약속했다.
이와 함께 양국 장관은 상호 전략적 소통을 강화하고 북핵 등 주요 사안을 원활하게 협의하기 위해 외교장관간 핫라인을 개설하기로 합의했다. 윤 장관은 중국의 대북 특사 파견에 대해 "(중국이) 그런 것도 염두에 두고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지 않겠느냐"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양국 장관은 6월로 예상되는 박 대통령의 방중 시기도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장관은 왕 부장에 이어 리커창(李克强) 국무원 총리와 왕자루이(王家瑞)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잇따라 접견했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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