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후반 내수시장에서 벽에 부닥친 대한전선. 이 회사는 해외, 그것도 우리나라에는 불모지나 다름없는 아프리카로 눈을 돌렸다. 200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현지 업체와 파트너십을 맺고 'M-TEC'를 설립한 것. 직원 대부분을 현지인으로 채용하는 등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채택한 대한전선은 2008년 매출 2억 달러를 돌파했고, 현지 광케이블과 동선 시장의 60%를 점유했다. 지난해엔 삼성물산과 컨소시엄을 구성, 서아프리카 말리와 3,500만달러 규모의 전자정부 구축사업 계약도 체결하는 등 우리 기업의 아프리카 대륙 진출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의 신흥시장 지형도가 변화하고 있다. 지금까진 아시아와 중동을 주력 신흥시장으로 삼아 왔지만, 이제 중남미(Latin America)와 아프리카(Africa)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고 있는 것. 이 지역들이 뜨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천연자원이 풍부하고, 최근 들어 각국 정부의 인프라 투자도 활발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 빈국'이자 '기술 강국'인 우리나라 입장에선 최적의 신흥시장인 셈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국내 대기업 60개사를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현재의 주력 신흥시장으로 아시아(57.7%)와 중동(18.3%)를 꼽았다. 아프리카와 중남미는 각각 12.5%, 11.5%에 불과했다.
그러나 '향후 2년 내 주력시장'을 묻는 질문에는 전혀 다른 응답이 나왔다. 여전히 아시아(42.9%)가 1위이긴 했지만 그 비중이 대폭 줄어든 반면, 중남미(25.0%)와 아프리카(21.4%)는 수직 상승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아시아와 중동은 국내외 업체 간 경쟁 격화에 따른 수익률 저하, 시장 포화 등으로 점차 매력을 잃어 기업들이 새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남미와 아프리카를 주목케 만드는 이유는 성장 잠재력이다. 중남미의 경우 1990년대 이후 꾸준한 개혁ㆍ개방으로 경제성장을 거듭, 최근 5년간 지역 평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4.8%)이 세계 평균(4.2%)을 상회하는 등 성장세가 계속되고 있다. 올해도 칠레(4.5~4.7%)와 페루(5.8%)를 비롯, 대부분의 나라가 4%대의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은 전망했다. 인구 5억 8,000만명(세계 인구의 8.5%)의 거대 내수시장이나 니오븀(세계 생산량의 91.9%), 리튬(50.3%), 은(40.6%) 등 풍부한 핵심 전략자원도 빼놓을 수 없는 성장 요소다.
아프리카 역시 포스트 브릭스(BRICsㆍ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신흥 경제대국)로 꼽힐 정도. 아직은 세계 최빈곤지역이지만, 돌려 말하면 마지막 남은 시장이기도 하다. 실제로 2000년 3,000억달러였던 GDP는 10년 만에 1조달러로 3배 이상 치솟는 등 매년 5%대의 경제성장률을 기록 중이다. 백금(95.5%)과 다이아몬드(60.3%), 코발트(50.3%) 등 주요 광물자원이 매장돼 있어 이들 자원부국을 중심으로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수요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일례로 이 지역 건설ㆍ플랜트 시장은 지난해 기준 518억억달러 규모에 이르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영화 코트라 신흥시장팀장은 "중남미와 아프리카 입장에선 우리나라가 경제발전의 롤 모델이라 한국 기업의 이미지가 매우 좋아 상호협력 관계가 형성되기 쉽다"며 "그 동안 지리적으로 멀다는 장애요인이 있었지만 글로벌화의 진행으로 진입장벽도 점차 낮아지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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