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이 원로 집단지도체제로 전환한다. 김승연 회장 구속에 따른 리더십 공백이 길어지고 이로 인해 해외사업 차질 등 경영 피해가 확산됨에 따라, 그룹 내 60대 원로들을 중심으로 비상경영에 들어간 것이다.
한화는 24일 원로 경영인이 주축이 돼 그룹의 주요 업무를 관장하고 최종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비상경영위원회'를 가동한다고 밝혔다. 비상경영위 위원장은 김연배(69) 한화증권 부회장이 맡고, 홍기준(63) 한화케미칼 부회장, 홍원기(62) 한화호텔&리조트 사장이 위원으로 참여한다.
김 회장 구속 이후 실질적으로 그룹을 이끌어 왔던 최금암(53) 경영기획실장은 실무총괄위원으로 3인을 돕는다.
비상경영위는 그룹의 주요 업무를 3개 부문으로 나눠 ▲한화생명 한화증권 등 금융부문은 김연배 부회장 ▲한화케미칼 한화솔라원 등 제조업부문은 홍기준 부회장 ▲호텔 등 서비스부문은 홍원기 사장이 각각 지휘하도록 했다.
위원회는 앞으로 ▲국내ㆍ외 대규모 투자 ▲신사업 계획 수립 ▲주요 임원인사 등 그룹의 모든 대소사에 대해 총수를 대신하는 최고의사결정기구 역할을 하게 된다. 한화 관계자는 "위원회는 현안이 있을 때마다 수시로 의사결정회의를 하고 전원합의체 형식으로 결론을 도출할 것"이라며 "필요에 따라 각 계열사 CEO들도 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화가 그룹 운영을 원로급 경영진에 맡긴 건 글로벌 경기침체가 갈수록 악화하는 상황에서 김 회장의 장기공백에 따른 경영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기 때문. 특히 지난 15일 열린 항소심에서도 김 회장이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 받고 건강회복까지 늦어지자, 당분간 복귀가 힘들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한화는 지난해 8월 김 회장의 법정 구속 이후 최금암 실장을 중심으로 비상체제를 꾸려 왔지만, 일상적 관리 수준이었을 뿐 사업전략 같은 주요 경영판단은 보류해왔다. 정기인사도 미뤄진 상태다. 이와 관련, 최 실장은 구속집행정지로 병원 치료 중인 김 회장을 찾아가 "그룹의 주요 사안에 대한 의사결정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설득, 비상경영위 결성을 승인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솔라원 기획실장은 현재 30세로, 아직 경영전면에 나서기는 힘든 상황이다.
사실상 총수대행 역할을 하게 된 김연배 부회장은 1968년 한화에 입사한 그룹 내 최고원로. 김 회장을 오랫동안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한데다 특히 환란 직후 한화그룹이 심각한 경영난에 봉착했던 1999년부터 3년간 구조조정본부장을 역임하며 위기극복을 진두 지휘한 적이 있어, 지금의 난국을 돌파하는 데 최적임자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현재 대표이사 아닌 부회장으로 사실상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있었는데, 이번에 구원투수로 긴급 투입됐다.
재계 관계자는 "그 동안 한화는 3세 경영체제 구축차원에서 그룹 실무 사령탑도 젊은 최금암 실장에게 맡겼는데 총수 유고상황이 장기화하면서 결국 다시 원로들을 찾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한화는 당장 1분기 넘도록 확정하지 못한 올해 신규 투자계획과 정기 임원 인사 등 경영관련 사안의 급한 불부터 끈다는 방침이다. 또 김 회장이 직접 챙기다가 좌초위기를 맞고 있는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80억달러) 프로젝트를 정상추진하고, 그룹의 미래수익원인 태양광사업의 포트폴리오 조정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김 부회장은 "한화가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지만 이번 사건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국민과 고객, 주주로부터 신뢰받는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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