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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식의 세상만사] 준비된 현실, 日 보수우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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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식의 세상만사] 준비된 현실, 日 보수우경화

입력
2013.04.24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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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략의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정해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국가와 국가의 관계에서 어느 쪽의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그제 참의원 답변이다. 일본 정부의 퇴행적 역사인식이 마침내 갈 데까지 갔다.

앞서 2월 25일 박근혜 대통령 취임 축하 특사로 날아온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장관이 늘어놓았다는 허튼소리를 판에 박은 듯하다. 아소 부총리는 "역사를 직시해 과거의 상처 치유에 노력하자"는 박 대통령의 덕담을 작심한 듯 내쳤다. "미국의 남북전쟁을 두고 북부에서는 '시민전쟁'으로, 남부에서는 '북부의 침략'으로 가르친다. 같은 국가, 민족이라도 역사인식은 일치하지 않는데 다른 나라 사이에야 오죽하겠는가."

현직 총리와 유력한 차기 총리인 일본 집권당의 두 실력자가 같은 말을 쏟아내는 데는 미리 입을 맞출 필요도 없었다. 그저 국내외의 압력에 떠밀려 속마음을 억지로 감추지만 않는다면, 언제든 가능한 '18번'이자 입버릇이기 때문이다. '출신 성분'부터 그렇다. 아베 총리는 1955년 자민당 결성으로 매듭된 일본 보수우파의 정치적 결집의 상징적 인물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외손자다. 일제가 중국침략 과정에서 세운 괴뢰 만주국의 실질적 설계자이자 산업계를 지배한 실력자였던 기시는 패전 후 'A급 전범'으로 분류됐으나 사형을 면하고 3년 간의 복역으로 때울 수 있었다. 그 동생인 사토 에이사쿠는 아소 부총리의 외조부인 요시다 시게루의 정치적 후계자로서 일본 보수정치의 원류를 이루었다. 아소 부총리의 증조부 다키치(太吉)는 일제치하 강제 징용과 노동 착취로 악명이 높았던 아소 탄광의 창업자다. 두 사람 모두에게 일제의 침략과 강압적 식민지 지배에 대한 진지한 반성은 불가능했다. 조상의 잘못을 인정하는 대신 온갖 핑계와 궤변으로 정당화하려는 인지상정은 아베와 아소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정치인이 함부로 속마음을 드러낼 수는 없다.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와 '아베노믹스'에 의한 회복 조짐이 그 토양이 됐다. 현재 자민당 정권이 본격화하고 있는 역사 정당화 작업은 30년 전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가 한 차례 시도했다가 좌절한 '거사'의 속편이다. 나카소네는 1985년 8월 15일 일본 총리 최초로 야스쿠니 신사에 공식 참배, '야스쿠니 문제'를 촉발한 장본인이자 역사 정당화, '국민교육' 강화를 위한 교육법 개정, 집단적 자위권 행사 등을 위한 평화헌법 개정 등 일본 보수파의 '3대 숙원'의 주창자이다. 그의 소원은 한중 양국과 일본 국내의 반발로 불발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일본사회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장기 침체가 부른 국민적 좌절감은 돌파구가 필요했다. 준비를 거듭해 온 보수우파가 이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을 앞세운 전면적 역사공세가 시작됐다. 한동안 주춤했던 이들의 공세는 지난해 독도ㆍ댜오위다오(釣魚島) 갈등과 자민당의 총선 압승으로 탄력이 붙었다.

한편으로 이런 현실은 미국이 군국주의 잔재 청산에 실패한, 아니 실패를 선택한 순간에 예고된 것이기도 하다. 독일은 철저한 전쟁관계자 처벌과 함께 국민적 반성의 표시로 나치즘에 대한 찬양ㆍ동조 자체를 헌법으로 막았지만,음지의 곰팡이 같은 네오나치즘을 완전 척결하지 못했다. 어정쩡한 전후 청산에 이어 구 소련과의 대결을 이유로 미국이 A급 전범의 집권까지 허용했으니, 집단 광기를 불렀던 군국주의의 씨앗까지 제거하기는 애당초 글렀다.

^다만 아베 정권의 궁극적 노림일 개헌 전망은 흐릿하다. 일련의 역사 망언이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둔 보수우파 총동원령임은 물론이다. 자민당을 비롯한 보수우파는 중의원에서 개헌안 발의에 필요한 3분의 2 의석을 훌쩍 넘었지만, 3년마다 242석의 절반만 바꾸는 참의원 선거에서 크게 이겨도 전체의 3분의 2는 아득하다.아베 정권이 현재의 압도적 지지를 이어가더라도 최소 3년의 여유는 주어진 셈이다. 국제사회의 양심과 보편적 역사인식으로 일본의 일탈을 가로막기에 결코 모자라지 않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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