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에서 영구 귀국한 할아버지들은 이곳에서도 이방인일 뿐이었어요."
지난 15일 인천 남동구 논현동 고잔고등학교 교장실. 러시아 사할린을 떠나 2007년 논현동 임대아파트에 정착한 신동식(78ㆍ사할린 경로회장)ㆍ임진옥(75)ㆍ박성(75)ㆍ박준석(78)씨에게 책 한 권씩이 전달됐다. 이 책에는 일제강점기인 1942년 "돈을 많이 주겠다"는 일제의 꾀임에 빠져 사할린의 탄광으로 떠난 아버지를 찾아 이듬해 부산, 일본을 거쳐 사할린으로 이주한 신씨 등의 지난 세월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고잔고 3학년 정재연(18)양 등 지역사회 조사활동 동아리 '한별단' 소속 학생 14명은 지난해 8월부터 논현동 거주 사할린 동포들을 일일이 만나 인터뷰하면서 그들의 일대기를 적어 내려갔다. 사할린 경로회와의 자매결연, 사할린 동포 지원을 위한 남동구청과의 업무협약 체결 등 학교와 사할린 동포들의 인연이 계기가 됐다. 논현동에는 현재 500여명의 사할린 동포가 거주하고 있다.
학생들은 1938년부터 일제의 꾀임에 빠지거나 강제 징용돼 끌려간 사할린 동포들의 이주과정과 비참했던 생활상을 담아 지난달 한 권의 책으로 펴냈다. 탄광, 군수공장 등에서 혹사 당하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맞았지만 일제의 국적 박탈, 한국정부의 외면 등으로 잊혀진 동포들의 사연이 이 책에 담겼다. 신동식 사할린 경로회장은"동포들이 차별 받았던 삶을 기록하고 책으로 남겨준 학생들에게 큰 빚을 졌다"고 말했다. 정재연양은 "위안부 문제와 달리 잘 알려지지 않은 사할린 동포들의 이야기가 이 책을 통해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앞으로도 다양한 방식으로 사할린 동포들과의 인연을 이어갈 계획이다. 강수진(18)양은 "한 사할린 동포 할아버지가'나중에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냐'고 물으신 것이 기억난다"며 "사할린 동포들의 정신적인 아픔까지 치유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이환직기자 slamh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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