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로 일본 기업들의 순익이 개선되는 등 아베노믹스의 초반 성과는 언뜻 화려해 보이지만, 그 본질은 남은 판돈을 모두 털어 넣고 벌이는 '올인 도박'에 가깝다. 만일 아베노믹스가 당초 목표 달성에 실패한다면 일본 경제가 지금보다 더 추락할 수 있다는 얘기다. 1차 돈 풀기는 효과를 봤지만 더 중요한 2,3차 단계가 남아 있어 최종 성공 여부를 점치기도 아직은 이르다. 한편에선 돈 풀기의 부작용도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일본 정부가 아베노믹스를 통해 노리는 것은 지난 20년 간의 장기침체 탈출이다. 이를 위해 ▲공격적 금융완화 ▲대규모 재정확대 ▲획기적 성장전략 등 이른바 '3개의 화살'을 수단으로 제시했다. 세 가지가 잘 어우러지면 기업수익 증가→임금 상승→소비 증가→수요 확대→설비투자 확대의 선순환을 통해 디플레 탈출이 가능하다는 기대다.
1단계 금융완화는 이미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물가목표를 2%로 높이고 국채 매입량을 2배로 늘리는 등의 정책 효과로 주가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엔화 가치가 달러당 100엔에 육박하면서 도요타, 닛산 등 수출기업의 순익도 급증하고 있다. 개인과 기업들의 각종 심리지수도 일제히 상승했다.
문제는 아베노믹스를 완성할 2,3단계가 아직 불확실하다는 것. 두 번째 화살인 재정확대의 경우 지난해 추가경정예산 편성에 이어 92조엔 대의 대규모 올해 예산안이 중의원을 거쳐 참의원 통과를 기다리는 상태. 하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국가부채를 짊어진 일본 경제에 추가 재정지출은은 큰 부담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3일 일본경제 보고서를 통해 "현 상황에서 재정확대는 통찰력 있는 정책이라 말하기 어렵다"며 "지난 20년간 15차례나 실시했던 공공사업 중심의 부양책이 헛것이 됐던 나쁜 기억이 있다"고 평가했다.
일본의 표현을 빌리자면 "차원이 다른" 성장전략이 세 번째 화살인데, 이 역시 여전히 물음표다. 일본 정부는 6월 발표할 중장기 성장전략에서 민간투자 촉진책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여 등을 노리고 있지만 말처럼 쉬운 과제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국제경제부 권승혁 차장은 "3개의 화살이 당초 의도대로 경기 선순환으로 이어지지 않을 경우, 일본은 엄청난 재정부담 등 부작용으로 크게 추락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한편에선 벌써부터 돈 풀기 정책의 부작용이 노출되고 있다. 아베노믹스에 따른 엔저 현상은 도요타 같은 자동차기업엔 횡재지만 에너지 수입 비중이 전체 수입의 절반에 달하는 일본경제 전반에는 적지 않은 부담이다. 재작년 원전 사고 이후 화석원료 수입을 대폭 늘린 일본은 액화천연가스(LNG) 최대 수입국이며 석탄은 세계 2위, 원유는 3위 수입국이다. 환율이 오른 만큼 내수 전반에 가격인상 부담이 전가되는 구조다. 대신증권은 당장 일본 기업들의 1분기 실적발표를 앞두고 자동차, IT 등 수출업체의 깜짝 실적 이면에, 에너지ㆍ소재ㆍ식품 같은 수입ㆍ내수업체의 실적 추락이 교차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금처럼 양적완화가 계속되면 제로금리에 머물던 일본의 금리도 조만간 치솟을 수 있다. 이 경우 국채 이자 부담이 크게 늘어 일본 정부뿐 아니라 금융기관까지 연쇄 타격이 불가피하다. OECD는 "장기금리가 추세적으로 상승하면 국채를 보유 중인 일본의 금융기관과 일본 경제는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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