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를 포함한 3개 이상의 금융계열사를 보유한 대기업이 지주회사로 전환하려면 중간금융지주를 새로 설치해야 한다. 또 대기업 집단 내 금융회사가 비금융계열사에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은 5%로 제한된다.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은 24일 청와대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2013년 업무계획'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공정위는 이 자리에서 현 정부의 선거공약이기도 했던 대기업들의 지배구조 투명화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확정했다.
우선 지주사 전환을 유도하기 위해 일반지주사의 금융자회사 보유를 허용키로 했다. 다만 ▦보험사를 포함해 금융보험사가 3개 이상이거나 ▦금융보험사 자산규모가 20조원 이상인 대기업은 중간금융지주사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금산분리를 완화하는 대신 지주회사 내 중간칸막이를 설치해 부작용을 줄이겠다는 복안이다. 신영선 공정위 경쟁정책국장은 "중간금융지주를 도입할 경우 금융과 비금융 간 출자고리가 단절돼 대기업 집단 내 금산분리가 강화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올 12월 입법을 목표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금융보험사의 의결권 제한도 강화된다. 적대적 인수합병(M&A) 방어를 위해 현행처럼 특수관계인과 합해 15%까지 의결권 행사는 인정된다. 다만 여기에서 금융보험사가 행사할 수 있는 지분율은 5%로 제한된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삼성 오너일가와 계열사가 행사할 수 있는 삼성전자에 대한 의결권은 현재 15%에서 13.93%로 줄어들고, 호텔신라에 대한 의결권도 15%에서 10.24%로 감소할 전망이다.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총수일가가 자본투자 없이 기업을 인수해 지배력을 확장하는 행위나 편법적 세습행위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다만 기존 순환출자를 강제로 해소할 경우 대규모 신규자금이 소요돼 투자위축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 공시제도 등을 활용해 자발적 해소를 유도하기로 했다.
논란이 됐던 일감 몰아주기 관련 규제도 다소 완화했다. 총수 일가 지분이 30% 이상인 계열사에서 부당 내부거래가 적발되면 직접 증거가 없어도 총수가 관여하거나 지시한 것으로 추정하는 '총수지분 30%룰'은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 또 일감몰아주기 부당성 입증 책임을 공정위가 진다는 점을 법규에 명시하기로 했다.
공정위의 지배구조 개선 방안에 대해 재계는 엇갈린 반응이다. 현행법상 지주사 전환시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금융계열사를 팔아야 하는 부담 때문에 지주사 전환을 미뤘던 기업들에게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적용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11개 금융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는 삼성이다. 현행법 대로라면 삼성이 일반 지주사로 전환할 경우 삼성생명과 카드 등 지분을 팔아야 하지만 법이 바뀌면 중간에 금융지주사만 설립하면 금융계열사를 팔지 않아도 된다.
지배구조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삼성은 과거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였으나 삼성카드가 보유한 에버랜드 지분을 팔면서 이미 순환출자 구조가 깨어지고 수직구조로 바뀐 상황이다. 따라서 중간에 금융지주사가 끼어든다고 해서 지배구조 또한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다만 금융지주사 설립을 위한 수조 원대 비용 지출은 불가피하다.
따라서 재계에서는 이번 공정위 발표가 삼성 등 지주사 전환을 검토하는 기업들에게는 긍정적이라는 해석이다. 이에 대해 삼성은 "노 코멘트"로 일관하고 있으나, 지주사 전환의 걸림돌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지주사 전환을 구체적으로 검토할 것이라는 게 재계 관측이다.
하지만 금융계열사가 그룹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기업들의 경우 중간 금융지주사를 설립하려면 비용 부담은 물론이고 지배구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화, 동부그룹 등은 금융계열사의 자산총액이 일반 계열사를 압도한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 등 일부 기업들에게는 금융계열사를 보유한 채 지주사로 넘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며 "금융계열사 자산 총액이 월등 많은 일부 기업들은 중간에 금융지주사를 둘 경우 일반 계열사와 상호출자가 끊어져 지배구조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