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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창조경제, 도그마를 깨야 성공한다

입력
2013.04.23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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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경제가 느닷없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요란하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 경제야말로 부단한 창조의 연속이었다. 그게 아이디어와 기술의 결합, 창의적 도전, 혁신과 통찰을 질료로 한 어떤 것이라면 말이다.

1952년 12월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방한해 부산 유엔군묘역을 방문키로 했다. 주한 미군은 풀 한 포기 없이 살풍경한 묘역을 보이기 난감했지만 엄동설한에 잔디가 있을 리 없었다. 미군 발주공사를 하던 건설사의 한 젊은 사장이 해결사로 나섰다. 낙동강변 보리싹을 옮겨 심어 한겨울 묘역을 순식간에 푸른 초원으로 바꿔놓는 '기적'을 일궜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었다. 1984년 서산 방조제 공사 때, 거센 물살 때문에 난공불락이었던 방조제 연결공구를 폐유조선으로 막아 물막이공사의 신기원을 연 것 역시 정주영식 창조경제의 신화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최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창조경제 기반조성을 위해 세계 톱 1%의 과학자 300명 유치와 연구인력 양성계획을 내놨다. 하지만 일찍이 인재육성의 중요성을 통찰한 건 고 최종현 SK그룹 회장이다. 그는 국민소득 300달러에 불과했던 1970년대 초에 한 청년에게 인재육성 100년 사업을 제안했다. "이스라엘보다 우리나라 사람들 머리가 더 좋아.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키워 선진국 돼야 해. 돈을 내가 벌어 댈 테니 당신은 앞으로 30년 동안은 우리 젊은이들이 밖에 나가 세계 최고의 지식을 배워 오도록 하는 일을 맡아주게."

그렇게 설립된 한국고등교육재단에서 최 회장의 뜻에 따라 35년여 간 '사람농사'만 지었던 사람이 최근 SK그룹으로 자리를 옮긴 김재열 부회장이다. 그리고 그 동안 재단은 현직 서울대 교수 60여명을 포함해 600명에 이르는 각 분야 박사들을 길러냈다.

문화와 신기술의 융합이라는 면에서 가수 싸이의 '젠틀맨'도 창조경제의 모범이라는 찬사를 얻었다. 기존 콘텐츠인 '시건방춤'을 재창조했고, 유튜브라는 정보통신기술(ICT)에 기반한 소셜미디어를 통해 엄청난 유행을 일으켰다는 점에서다. 그런데 세계를 뒤흔든 싸이의 '젠틀맨'을 각종 음원차트에서 단숨에 누른 게 추억 속의 가수로 여겨졌던 조용필의 신곡 '바운스'다. 창조경제니 뭐니 하는 것과 관계 없이, 그냥 록을 기반으로 한 자신의 음악세계를 견지하면서 혁신을 통해 젊은 감각을 소화해 냄으로써 드문 성공을 이룬 것이다.

최문기 미래부 장관은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산업만으로는 일자리 창출과 경제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과학기술과 ICT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육성해 신산업을 창출해 창조경제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창조경제의 방향을 '세상에 존재하는 산업이 아닌 신산업을 창출하는 것'이라는 최 장관의 인식은 위태롭다. 창의와 도전, 혁신과 통찰의 전범을 보인 정주영이나 최종현 같은 거인의 삶도 그랬거니와, 싸이나 조용필의 신기원도 세상에 없는 걸 만든 게 아니라, 있는 걸 다지고 혁신하여 단 한 걸음의 창조에 다가간 것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컨설팅사인 맥킨지는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경제는 뜨거워지는 물 속의 개구리와 같다"고 했다.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한강의 기적이 멈췄다"고도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된 건 우리가 하늘 아래 새로운 신사업을 만들지 못해서라기보다, 경제여건이 부단한 창조와 혁신의 에너지가 원활히 발현되기 어려운 상황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미래부는 업무보고에서 전국 우체국에 '무한상상실'을 설치하는 데서부터 기초과학 및 소프트웨어(SW) 분야 집중양성 계획에 이르기까지 수치 중심의 성과 지향적 정책목표를 장황하게 나열했다. 하지만 하늘 아래 새로운 창조경제는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산업 전반의 생산성 제고, 중공업 고도화, 제조업 부흥이나 강소기업 육성 같은 기존의 정책 아젠다가 훨씬 중요할 수 있다. 미래부가 창조경제라는 도그마(dogma)에 빠져 헤매면, 우리 경제는 자칫 이 중대한 시기에 신기루 같은 '벤처 놀음'만 되풀이할 수도 있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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