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스타 장근석을 모델로 한 서울 명동입구의 한 화장품 가게의 대형 간판 앞에서 쑥스러운 표정으로 사진을 찍던 일본 아줌마 관광객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다.
한류드라마의 원조‘겨울연가’의 짜릿한 감동은 더 이상 한일양국이 직면한 현실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는 분위기다. 최근 일본의‘우익 포퓰리즘’으로 한일관계가 냉각되고, ‘엔저 쇼크’가 이어지면서 일본인 관광객들의 한국방문도 급감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들이 즐겨 찾던 서울 명동과 남대문시장 일대도 예전과는 다른 분위기이다.
23일 오후 서울 명동과 남대문 시장 일대는 평소 일본 관광객으로 북적이던 모습과는 달리 이젠 남녀노소 구분 없이 중국인들이 관광객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명동의 한 의류 매장 상인은 “평소 일본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았던 것과는 달리 요즘엔 중국인 관광객이 외국인 고객의 70%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명동의 한 환전상도 “엔화 약세가 이어지면서 일본인들이 사라진 후 환전을 하려는 외국인은 찾기 어려울 정도”라며 “명동의 주요 상가가‘엔저 쇼크’로 모두 문을 닫아야 하는 것은 아닌가 우려된다” 고 하소연했다.
서울시와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일본의 황금연휴가 시작하는 내주 골든위크(4월 27일 ~ 5월 6일) 기간 한국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의 예약률이 지난해에 비해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여행사를 통한 한국관광 예약률이 ‘줄었다’는 응답이 93.2%에 달했다. 특히 지난해만해도 이 기간 일본인 관광객이 밀물처럼 몰려와 서울과 부산 등의 특1급호텔 등에는 빈방이 없을 정도였는데, 최근 객실예약률은 지난해에 비해 20~3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플라자와 롯데호텔 등 서울 강북권 특1급 호텔은 일본인 객실 예약률이 예년보다 30% 줄었다. 노보텔 앰배서더 부산 역시 지난해 골든위크 기간 일본인 관광객이 객실 200개 정도를 사용했으나 올해는 23일까지 125개만 예약된 상태였다.
이날 봄비가 내린 명동과 남대문시장 일대를 찾는 일본인 관광객들은 올해 초와 비교해 눈에 띄게 적었다. 명동에 위치한 한 화장품 업체 관계자는 “화장품 매장에는 주로 일본인 관광객이 많이 찾기 때문에 아르바이트생을 뽑을 때 일본어가 능통한 학생들로 선발했는데 최근 중국인 관광객들이 오히려 몰리면서 아르바이트생을 다시 뽑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일본 관광객들의 주요 쇼핑 품목 가운데 그 대표가 화장품”이라며“명동 일대에 화장품 매장이 몰려있는데 최근 일본 관광객들이 줄면서 이곳의 매출이 지난해 말에 비해 무려 50%정도 급감했다”고 말했다.
엔저 현상으로 일본인 관광객들이 줄자 이 여파는 숙박업계에 직격탄으로 이어졌다. 서울 시내 한 특급호텔 관계자는 “중국인 관광객들은 주로 비즈니스 호텔에 묵기 때문에 일본인 투숙객의 빈 자리를 내국인으로 채우기 위해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인 관광객 급감에 대비해 명동과 남대문 시장 일대 상인들은 이미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한 남대문 시장 상인은 “화장품을 주로 찾는 일본인들과 달리 중국인 관광객들의 쇼핑 품목인 먹거리를 더 홍보하고 있다”며 “남대문 입구에 설치된 일본어 안내 문구를 내리고 대신 중국어 안내 문구를 재 배치해 중국인 관광객들을 모으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현빈기자 hb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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