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체제가 출범한 뒤 일본이 급속하게 우경화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일본의 과거사를 반성한 무라야마 담화의 재검토를 공언하고 각료와 국회의원들은 야스쿠니 신사에 줄지어 참배하고 있다. 주변국과의 마찰을 줄이기 위해 7월 참의원 선거 때까지는 경제에 올인하겠다던 아베 총리의 약속이 공염불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현상은 아베 총리가 대중적 지지도를 근거로 과도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12월 중의원 선거에서 의석 수 3분의 2 이상을 확보하는 대승을 거뒀고 이후 아베노믹스를 통해 주가 상승, 엔화 하락을 이끌어냈다. 최근 일본은행이 발표한 양적완화 정책은 한국, 대만 등 주변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주요20개국(G20)의 호응을 얻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 논의도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이런 호재 덕분에 지지율이 계속 70%대를 기록하자 아베 총리는 헌법 96조 개정 문제를 참의원 선거 공약으로 내걸고 무라야마 담화도 바꾸겠다고 하는 등 우익 본성을 드러내고 있다. 외교적으로 민감한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하지 않으면서도 공물 봉납과 함께 아소 다로 부총리 등 각료의 참배를 묵인해 일본 보수세력을 달래면서 주변 국가의 반발은 최소화하는 교묘한 전략을 썼다. 그러면서도 10월에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겠다는 뜻을 흘려 자신을 지지하는 보수층의 결집을 다지고 있다.
물론 아베 총리의 전략이 전적으로 지지를 받는 것만은 아니다. 아사히(朝日)신문은 23일 사설에서 "야스쿠니 참배는 역사 인식에 관한 문제로 (한중) 양국의 반발은 당연히 예상된 것"이라며 "(아베 정권의) 높은 지지율 때문에 긴장감이 떨어진 것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마이니치(每日)신문도 "북한 문제와 관련, 한중 양국의 협력이 어려워지면 일본의 국익을 해칠 수 있다"며 "(야스쿠니 참배는) 무신경한 행동으로 지극히 유감"이라고 사설에서 지적했다. 가이에다 반리(海江田万里) 민주당 대표는 "정권 핵심에 있는 사람은 대국적 입장에서 행동해야 한다"고 했고 시이 가즈오(志位和夫) 공산당 위원장은 "야스쿠니 참배는 침략 전쟁을 긍정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베 총리의 우익 성향에 동조하는 세력은 갈수록 늘고 있다. 23일 집단 참배한 '다함께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모임' 의원 168명에는 집권 자민당 의원뿐 아니라 민주당, 다함께당, 생활당, 일본유신회 등 야당 의원들도 대거 포함돼있다.
일본 극우파 단체 '간바레 닛폰' 회원 80여명이 이날 오전 선박 10척을 타고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ㆍ釣魚島)열도 인근 해상으로 진출한 것도 우경화 분위기를 보여준다. 이들의 접근에 맞서 중국이 해양감시선 8척을 주변 해역에 진입시키면서 중국과 일본의 긴장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간바레 닛폰은 지난해 8월에도 어장 탐사를 이유로 센카쿠 해역에 도착했으며 당시 10여명이 섬에 기습 상륙, 중국의 대규모 반일시위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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