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의혹 수사과정에서 경찰 고위층의 사건 축소 지시가 있었다는 수사 실무책임자의 폭로에 대해 경찰이 진상조사에 나섰다. 이와 관련, 이성한 경찰청장은 그제 기자간담회에서 "당시 실무팀장이었던 권은희 수사과장이 주장하는 내용에 대해 진상조사를 할 방침"이라며 "권 과장의 주장이 잘못되거나 과장된 것으로 밝혀지면 감찰을 고려해 보겠다"고 말했다. 수사압력 여부에 대한 진상을 파악한 뒤 감찰을 통해 책임 소재를 가릴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사건수사의 실무책임자였던 권 과장은 "경찰 수뇌부가 수사에 부당하게 개입하면서 지속적으로 축소ㆍ은폐를 지시했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대해 경찰은 부당한 수사개입은 없었고, 부실수사도 아니었으며, 선거법위반 적용 배제도 정당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지난 4개월 간의 과정을 보면 경찰 수사가 공정하고 객관적이었다고 보기 어렵다.
설익은 중간수사결과를 대선 사흘 전에 갑자기 내놓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언론이 먼저 의혹을 제기하면 뒤따라가는 전형적인 뒷북수사의 행태를 보여왔다. 엊그제는 경찰이 핵심 인물인 국정원 심리정보국장의 이름도 파악하지 못한 채 출석요구서를 2차례 보냈다가 출석을 거부당한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수사의 가장 기본적인 절차도 따르지 않고 제대로 수사했다고 주장한들 누가 납득하겠는가.
지금 경찰은 오리무중에 빠진 고위 공직자 성접대 의혹 사건과 이번 국정원 사건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있다. 수사 의지와 역량을 의심받고 있을 뿐 아니라 부실수사에 축소ㆍ은폐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이러고도 수사권 독립을 요구할 자격이 있느냐는 자질론 마저 제기되는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진상조사는 매우 중요하다. 행여 수뇌부에는 면죄부를 주고 내부고발자는 옭아매는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추호라도 있어선 안 된다. 이미 검찰은 수사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김용판 전 경찰청장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한 점 의혹도 없는 진상조사를 통해 경찰이 스스로 거듭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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