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서울대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병원 수술실에 첫 출근한 김장언(54)씨는 하루 종일 동료 간호사와 의사들의 호기심 가득한 시선을 받아야만 했다. 서울대병원 최초의 남자 간호사라는 한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지금도 서울대병원 소아수술실 수간호사로 현장을 지키고 있는 그는 "당시 '청일점'이라 주변에선 마치 희귀동물 보듯 쳐다 봤다"고 웃었다.
김씨는 21일 출범한 대한남자간호사회 초대 회장을 맡았다. 간호사로 일한 지 30여년 만이다. 이상하게 바라보는 주변 시선에 위축됐던 남자간호사들이 뭉치는데 그만큼의 시간이 걸린 것이다. 그는 22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입사 당시엔 '간호사=여자'라는 인식이 뿌리깊어 환자 및 보호자와의 접촉을 가급적 줄이려 수술실에 지원했었다"며 "이제는 남자 간호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만큼 사회가 변했다. 앞으로는 (남자 간호사도) 전문직으로 인정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학창시절 교사를 꿈꿨던 그는 고3이었던 77년 '서울대 간호학과에 최초로 남학생이 입학했다'는 기사를 보고 진로를 바꿨다. 3형제 중 둘째로, 대입시에 낙방한 뒤 재도전한 그는 남이 안 하는 일을 하면서 재미있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집안에 간호학과 진학을 '선포'했다. "부모님과 형이 '미쳤냐', '거길 왜 가냐'며 일주일을 뜯어 말렸어요. 그래도 저는 재미있겠다는 생각에 '교수를 하겠다'고 간신히 설득해 서울대 간호학과에 진학했어요. 당시엔 철이 없었죠."
학교 생활 에피소드도 많다. 첫 수업 시간. 강의실을 가득 채운 여학생 속에서 그를 본 교수는 "자네 왜 쓸데 없이 이런 데 들어오냐"며 나가라고 했다. 체육 수업시간에 옷을 갈아 입을 땐 여학생 등쌀에 밀려 쫓겨나기도 했으며, 첫 MT때는 여학생들의 '방해'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기억도 생생하다.
이런 그가 남자간호사회 회장을 맡자 "큰 일 할 줄 알았다", "후배를 위해 마지막으로 봉사해라"는 축하와 격려의 전화가 쇄도하고 있다. "그 동안 남자 간호사들이 진출했던 분야와 관련된 각종 통계를 정리해 데이터베이스화한 뒤 후배들에게 비전과 방향을 제시할 작정입니다. 우리처럼 시행착오를 겪게 해선 안 되겠죠."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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