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에 걸렸거나 유통기한이 지나 동물 사료로나 쓸 냉동닭이 시중에 버젓이 유통된 것으로 확인돼 음식물 안전에 초비상이 걸렸다. 경찰은 사료용 닭을 공급해온 육가공업체가 10여년 전에도 병에 걸린 삼계탕용 닭을 유통시켰다가 적발된 사실에 주목, 이 업체가 유통업자와 짜고 사료용 냉동닭을 식용으로 판매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전북 익산경찰서는 22일 1년 이상 냉동보관돼 변질 우려가 큰 사료용 냉동닭 4만여 마리를 시중에 유통시킨 L푸드시스템 대표 서모(57)씨 등 직원 3명에 대해 축산물위생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또 서씨 등으로부터 사료용 닭을 식당 등에 판매해온 정모씨 등 중간 유통업자 9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서씨 등이 전남 나주에 본사를 둔 삼계전문가공업체인 A사로부터 사료용 생닭을 사들여 유통시키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월. 서씨 등은 도축 과정에서 심하게 훼손돼 판매할 수 없거나 질병에 걸린 사료용 닭을 1마리(평균 900g) 당 500원에 사들였다. 이어 포장지에 붙은 '사료용'이라는 상품표시를 떼어내고 '식용' '유통기한' 등의 상품표시를 위조해 붙인 뒤 마리 당 1,000~1,500원의 웃돈을 붙여 정씨 등 중간 유통업자 8명에게 판매했다. 서씨 등은 사료용 닭을 직접 가공해 포장용 삼계탕 2,500개를 유통시키기도 했다. 이 같은 방법으로 서씨 등이 지난해 7월까지 6개월간 정씨 등 중간 유통업자를 통해 전국에 팔아 넘긴 사료용 닭은 4만여 마리에 달했다.
서씨로부터 사료용 닭을 공급받은 정씨 등은 전국 44개 유명 편의점과 전통시장, 통닭가게, 삼계탕 업소, 인터넷 오픈마켓 등에 삼계탕용 등으로 납품했다. 경찰은 사료용 닭으로 제조된 포장용 삼계탕 1,700개를 전국의 유명 편의점에서 회수했다.
경찰은 서씨 등이 사료용 닭을 식용으로 둔갑시켜 유통하는 과정에서 A사와 유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뇌물이 오간 정황을 살피고 있다. 실제 경찰은 A사가 가공한 닭을 판매를 하는 자회사의 간부 K씨를 불구속 입건하고, A사 관계자 등에 대한 계좌추적을 벌이고 있다. A사는 2000년 뉴캐슬병 등 법정전염병에 걸린 삼계탕용 닭을 시중에 유통시켰다가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경찰은 지난 3일 L시스템의 가공공장에 대한 압수수색 과정에서 A사로부터 사들인 냉동닭과 냉동오리 가운데 상당량이 썩은 냄새가 나는 등 변질된 것으로 확인돼 폐기처분하기도 했다.
경찰은 A사가 장기간 냉동보관 중인 사료용 닭이 팔리지 않자 서씨 등에게 헐값에 넘기는 조건으로 식용 판매를 눈 감아줬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살펴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사료용 닭 유통을 둘러싸고 A사와 서씨간 어떤 식으로든 이해관계가 얽혀있거나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며 "사료용 닭의 공급과 유통 과정은 물론 A사와 서씨간 자금거래 관계도 면밀히 살펴 보고 있다"고 말했다.
박경우기자 gw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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