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의 '아르스 노바'는 오케스트라의 현대음악 시리즈로는 국내 유일한 것이고, 프로그램과 연주는 최상급이다. 서울시향 상임작곡가 진은숙이 2006년부터 이끌어 온 이 기획 공연은 20세기 현대음악의 걸작들과 미래의 고전이 될 만한 21세기 최신작을 소개해 왔다.
16일 실내악, 19일 관현악을 연주한 올해 아르스 노바 Ⅰ, Ⅱ는 이 시리즈의 가치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현대음악 전문 지휘자로 유명한 피터 히르시가 지휘한 이번 공연 프로그램은 대부분 아시아 초연 또는 한국 초연이었고 세계 초연도 한 곡 포함됐다. 여느 콘서트에서는 보기 힘들지만 아르스 노바에서는 흔한 풍경이다. 청중의 반응도 뜨거워서 환호성과 기립 박수가 터졌다.
음악의 도시 비엔나가 주제였던 16일 실내악 편은 제2 비엔나악파의 쇤베르크와 알반 베르크, 아르스 노바가 위촉한 젊은 작곡가 배동진(36)의 신작 '아타카 수비토'를 1부에, 오늘의 비엔나 현대음악을 대표하는 거장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하스(60)와 젊은 여성 작곡가 올가 노이비르트(45)의 곡을 2부에 배치했다. 노이비르트의 '로쿠스… 두블뤼르… 솔루스'(locus…doublure…solus)가 이날의 하이라이트였다. 고음역에서 피아노의 맹렬한 질주로 시작하는 이 곡은 작곡가 진은숙의 설명대로 거침이 없고 생동감이 넘쳤다. 협연한 피아니스트 임수연은 "막힌 속을 뻥 뚫어주는 곡"이라고 했는데, 그의 연주도 속이 뻥 뚫리게 대단했다. 청중은 열광했다.
콜라주가 주제였던 19일 관현악 편은 베른트 알로이스 침머만(1918~1970)에게 헌정하는 무대였다. 그는 현대음악의 가장 중요한 작곡가 중 한명이지만, 생존 당시 음악계의 주류이던 아방가르드에 끼지 않고 자기 스타일을 고집해 왕따를 면치 못하다가 독약을 먹고 자살했다. 침머만의 작품 2개, 트럼펫협주곡 '아무도 내가 아는 고통을 알지 못한다'와 극음악 '위비 왕의 저녁을 위한 음악'을 중심으로 찰스 아이브스, 요르크 횔러, 히나스테라의 곡을 나란히 소개했다. 침머만의 트럼펫협주곡과 요르크 횔러의 '횃불'을 협연한 호칸 하르덴베리에르는 세계 최고의 트럼페터라는 명성이 명불허전임을 입증했다.
하르덴베리에르의 트럼펫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던 이날 공연은 세계 초연인 히나스테라의 '교향적 연습곡'과 한국 초연인 침머만의 '위비왕…'으로 클라이맥스를 찍었다.
히나스테라는 1967년 밴쿠버 교향악단의 위촉으로 '교향적 연습곡'을 작곡했는데, 나중에 다시 쓴 최종판 유고가 연주되기는 이번 아르스 노바가 세계 최초다. 그동안 전혀 연주되지 않았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환상적이고 멋진 작품이다. 1부에서 히나스테라의 '마술적 리얼리즘'(진은숙의 표현)에 취한 청중들의 열렬한 반응은 2부 끝 곡인 침머만의 '위비왕…'에서 폭발했다. 르네상스 음악부터 바흐, 베토벤, 슈베르트, 바그너, 베를리오즈, 차이코프스키, 스트라빈스키와 재즈까지 여러 음악을 패러디해 신랄한 유머와 아이러니로 가득찬 이 작품은 독특하고 그로테스크한 매력으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특히 슈톡하우젠과 베를리오즈의 무시무시한 모티프 사이사이에 바그너의 '발퀴레'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대목의 강렬한 충격은 가히 메가톤급이다.
이렇게 훌륭한 음악들을 무대에서 다시 만날 기약이 없는 게 유감스러울 뿐이다. 한 번 연주하고 말기에는 너무 아깝다. 앙코르 공연으로 다시 보고 싶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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