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수사 실무책임자가 윗선의 축소ㆍ은폐 지시를 제기한 국정원 여직원 김모(29)씨 선거 개입 의혹 사건은 지난 4개월 동안 비상식적인 수사행태로 여러 뒷말을 낳았다. 기존의 수사관행과 크게 동떨어져 계속 비판이 제기돼 왔던 것이다. 섣부른 중간수사 결과발표, 관련자에 대한 늑장 소환, 더딘 수사속도, 이해할 수 없는 혐의 적용 등 석연치 않은 경찰의 수사자세 뒤에는 상당부분 경찰 상부의 의중이 개입된 정황이 보인다.
우선 지난해 12월 18대 대통령선거 3일 전에 나온 경찰의 중간수사결과 발표부터 여당 후보자에게 유리한 입지를 조성하려는 상부의 의도가 있었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당시 수사를 맡은 서울 수서경찰서는 김씨의 컴퓨터 하드디스크만 검사한 뒤 "대선 관련 댓글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했지만 이 과정에 상부인 서울경찰청의 수사축소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권 과장에 따르면 당시 수서서 수사팀은 김씨의 하드디스크에서 발견한 키워드 78개에 대한 분석을 서울경찰청에 요청했지만 서울경찰청은 '박근혜' '새누리당' '문재인' '민주통합당' 4개만으로 분석한 결과를 공표했다.
또 대선 직후 경찰청과 서울경찰청에서 투입된 사이버전문가 10여 명이 대부분 철수하고 수서경찰서 인력만으로 수사를 끌어간 것도 경찰 상부에서 적극적인 수사 의지가 없었다는 점을 드러낸다. 이 바람에 김씨가 대선 수개월 전부터 활동했던 진보 성향의 인터넷 사이트인 '오늘의 유머'(이하 오유) 운영자 이호철(41)씨가 경찰을 대신해 인터넷 사이트 상에서의 김씨 행적을 추적하는 일을 맡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생겼다.
더욱이 이씨가 김씨와 연관된 것으로 보이는 아이디 수십 개를 찾아내 수사를 요청했을 때도 경찰 상부에서는 "민주당이 고발한 혐의에 집중하라"며 수사 확대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 또 관련자에 대한 늑장 소환조사 등 수사의 거북이 걸음도 눈치보기 수사라는 말을 들었다.
김씨 등 관련자 3명에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이 아니라 국정원 직원의 정치개입 위반 혐의를 건 법리 적용의 적절성 부분도 경찰 수뇌부의 입김 가능성이 제기된다. 권 전 수사과장이 송파서로 발령 받기 직전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모두 적용될 수 있다는 취지의 중간 수사지휘서를 작성, 경찰의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에 남긴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수사 지휘서는 수사과정에 수사관들에게 내린 지휘 기록으로 권 전 수사과장이 실무 책임자로 내린 판단이 나중에 뒤집혔다는 뜻이다. 권 전 과장은 초기 2개월 동안 수사를 맡다 서울 송파서로 전보됐다.
이에 대해 서울경찰청은 "수서서가 애초 의뢰한 키워드는 100개로 '호구' '위선적' '네이버' 등 대선 관련성이 없는 게 대다수여서 핵심 키워드 4개만 선정했고, 국정원 직원 김씨가 '박근혜 문재인 후보 지지ㆍ비방 글만 확인'이라는 조건을 달아 하드디스크를 임의제출 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서울경찰청 전 고위 관계자도 "사건 수사는 수서경찰서에 모든 권한을 줬으며 상부 개입은 말도 안 된다"고 반박했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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