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나라 이스라엘에서 요즘 가장 잘 나가는 코미디언은 아랍계 이스라엘인 사예드 카슈아(37)다. 그가 주연을 맡고 있는 시트콤 ‘아랍인 노동자’는 이스라엘 TV방송 사상 가장 성공적인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꼽힌다. 초유의 아랍인 주연 방송이라는 우려를 깨고 7년째 롱런하며 시즌4 제작을 마쳤다. 평균시청률도 무려 40%에 달한다. 유대인 가구의 72%가 본 적 있는 이 ‘국민 프로’는 1월 이스라엘 방송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녀 주연상,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등 5개 부문을 휩쓸었다.
카슈아가 연기하는 주인공 암자드는 집에서는 남편, 아버지 노릇에 치이고 밖에서는 유대인 순혈주의에 젖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인정받고자 분투하는 아랍인 기자다. 그는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인물을 연기해서 좋다”며 자신과 암자드가 닮은 꼴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인 마을에서 태어난 카슈아는 영재학교인 이스라엘예술과학아카데미(IASA) 출신이다. 15세 때인 1990년 고향을 떠나 예루살렘에 있는 IASA에 입학한 이래 그의 인생은 정체성 혼란의 연속이었다. “처음 버스를 탔는데 내가 아랍인이란 걸 안 군인이 몸수색을 하겠다며 끌어내리더군요.” 그는 학창시절 내내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관찰하고 (유대인 언어인) 히브리어와 그것과 결부된 모든 문화를 습득하는데 열중했다”고 회고했다. 아랍어 대신 히브리어를 익히는 일은 그에게 “강한 사람들 쪽에 속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카슈아는 이스라엘 권위지 하레츠의 칼럼니스트이자 소설가로 활동 중이다. 그의 글에는 팔레스타인인이면서 이스라엘 국민이라는 두 상반된 정체성의 긴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최근 신작 소설 홍보 차 미국과 캐나다에서 북투어를 하던 중 기고한 칼럼에서 그는 자신에게 ‘(아랍인으로서) 정체성과 자기결정권’을 주창할 것을 요구하는 이들과 ‘히브리어와 유머, 미래’를 들려줄 것을 바라는 이들 사이에서 겪는 난감함을 토로한다.
아랍인 노동자 시즌3에서 주류 사회에 동화되고자 내내 좌충우돌하던 암자드는 마지막회에서 짙은 피로감을 드러낸다. 한밤중 공습경보로 피난소를 찾은 그는 적대적으로 돌변한 유대인 이웃들에게 ‘이스라엘과 아랍국가 중 어느 곳을 선택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는다. 대답은 이렇다. “주변부 인생을 선고받는 것을 피하라는 의미라면 태어난 곳을 택하겠다.” 암자드의 선택에 공감하느냐는 질문에 카슈아는 “진짜 현실을 알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선택”이라며 “때로는 암자드처럼 생각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훈성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