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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인간관계를 갈망하면서 도망치고 싶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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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인간관계를 갈망하면서 도망치고 싶어할까

입력
2013.04.19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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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적 현대' 주창한 지그문트 바우만 현대사회 인간관계 급격한 변화 성찰영원한 유대를 상실한 현대인 접촉하면서 떨어져 있을 수 있는 휴대폰·인터넷 등 가상세계에 집착연대의 순수성 잃고 섹스도 가벼워져 反자본주의적 이해 바탕한 융합이 대안

현대인은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한편,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연결되고 싶어하는 상충적인 욕구를 지니고 있다. 사람은 사랑에 빠질 때는 동시에 미리 사랑에서 빠져 나오는 것까지 염두에 둔다. 이중적 속성 탓에 빚어지는 취약한 유대감은 불안을 불러 일으키고 이는 우울과 고독의 원천이 된다.

현대사회의 유동적 성격과 인간의 조건을 분석한 '유동하는 근대' 시리즈로 유명한 폴란드 출신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88)의 는 인간의 가장 본질적이고 내밀한 부분인 '관계'에 주목한다. 그리고 한없이 유동적인 현대 사회에서 가장 보수적으로 변화하는 인간적 관계가 얼마나 참혹하고 급격하게 바뀌었는지를 성찰하며 우리가 왜 양면적이 될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유동성과 불확실성이 증가한 근대사회의 특성을 'liquid(유동)'라는 개념으로 설명해 전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는 바우만의 연작중 하나로, 영국에서는 10년 전에 출간됐다. 사랑, 성, 이웃, 연대의 순으로 책의 챕터를 나눴으나 이민자는 물론 도시화와 양극화 문제 등 다양한 화두와 주제를 넘나든다.

바우만이 이 책의 주인공으로 내세운 건 '유대없는 인간'이다. 영원한 유대가 없는 인간은 각자가 자기 능력대로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지는 것에 대해 절망하고, 쉽게 내팽개쳐질 수 있다고 느낀다. 따라서 함께함의 안전함과 어려운 순간에 의지할 수 있는 도움의 손길을 갈구하여 필사적으로 관계를 맺으려 애쓴다.

사람들은 서로 떨어져 있는 동안에도 접촉할 수 있도록 해주면서, 동시에 따로 떨어져 있을 수 있도록 해주는 휴대폰이나 인터넷 같은 가상 세계에 집착한다.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등 온라인상의 끈은 피로를 느낄 정도로 촘촘하게 넘쳐나지만 현대인은 관계에 대한 불안증에 시달린다. 때문에 고독을 퇴치하기 위한 애처로운 몸부림으로 신기루 같은 유대라도 맺기를 원한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여건이 바뀌면 다시 그 관계를 풀어버릴 수 있도록 유대를 느슨하게 하기 위해서 애쓴다. 영원한 관계를 갈망하며 필사적으로 관계에서 도망치는 현상은 우리가 새로운 국면에 들어왔음을 확인시킨다.

책은 지구화라는 추상적 개념이 사랑이라는 인간의 가장 내밀한 감정에 어떤 변화를 초래했는지 세심하게 살피고 있다. 가장 급진적으로 변화한 것이 섹스에 관한 통념이다. 바우만에 따르면 성은 더이상 중요치 않은 명제가 되어 버렸다. 섹스를 가벼움과 속도를 좋아하는 소비 생활에 빗대기까지 한다. 사랑, 성과 함께 인간성의 보루라고 여겨져 왔던 유대와 연대 역시 '서로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있기 때문에' 관계하는 것으로 순수성을 잃었다. 젊은이들이 수긍이 가는 것에 대해 '쿨하다'고 말하는 것 역시 쿨한 상태로 남아 있는 한에서만 둘 사이의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것으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함께 하겠다는 뜻의 반대다.

노학자는 유동적 현대의 쓰나미가 어느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도, 어떤 시대가 종말하고 다른 시대로 접어든 것도 아니라며 이게 바로 자본주의의 본색이라고 설명하며 탁월한 혜안을 보인다. 그러면서 현대인이 겪고 있는 관계의 우울과 불안은 반(反)자본주의적인 상호 이해에 바탕을 둔 융합만이 대안이라고 제시한다. 내용뿐 아니라 형식에 있어서도 노련함을 보인다. 우리시대의 독특한 형상을 풀이하는데 푸코, 비트겐슈타인, 아렌트 등의 사상과 문구를 집대성해 풍성하게 차려냈지만 가벼운 에세이 형식이라 난해함을 상당부분 해소했다. 논증적 방법을 택하지 않고 묵상을 열거하는 헐렁한 형식이라 내용 전개가 두루뭉수리해 보이지만 휴머니티적인 주제를 풀어나가는 데는 오히려 적합한 방법이다.

원서에서는 각 장의 소주제는 몇 장에 걸쳐 장황하게 설명되기도 하고 짧은 문장 몇 개로 콤팩트하게 구성되기도 하는데, 한국어판은 소주제마다 제목이나 핵심어구를 뽑아 잘게 나눴다. 가독성을 높이기 위한 출판사의 전략으로 일단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집어 들 게 한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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