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주재 일본대사까지 지낸 전직 외교관 마고사키 우케루는 일본 외교가에서는 드물게 자기 목소리를 내는 인물이다. 한국, 중국과 영토문제를 다룬 에서 전혀 일본 편을 들지 않는 것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로 친미 일색인 일본 외교가에서 유독 미국에 비판적이기 때문이다.
는 한글판 제목만 보면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 전반을 다룬 것처럼 보이지만, 이 책은 실은 전후 미국이 일본 정치에 간여한 역사를 되짚었다. 일본 정치가 미국에 추종하거나 휘둘려왔다는 주장을 담은 것이다. 이 책은 파격적이면서 재미있다. 일본의 역대 총리나 주요 관료의 정치적인 성패를 미국에 고분고분했느냐, 비판했느냐를 잣대로 정리했다는 점이 새롭고, 저자 자신이 외교 현장에서 경험한 이야기가 적지 않게 녹아 있어 현실감이 넘친다.
이 책은 지난해 일본에서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돼 일본의 중도진보매체인 아사히신문에서 출판면 고정코너인 '잘 팔리는 책' 서평으로 다뤘다. 하지만 그 글이 나간 뒤 빗발치는 비판을 받고 아사히신문은 이례적으로 내용 일부를 삭제하고 말았다. 문제가 된 것은 이 책을 '전형적인 음모사관에 지나지 않는다'고 평가한 대목이다.
하지만 표현이 지나친 것을 제외한다면 전체적으로 아사히신문의 서평은 매우 온당한 것이었다. 특히 정정한다며 그 신문이 삭제한 첫 10줄에 이어지는 내용은 이 책의 '정체'를 제대로 말해준다. '일본의 전후 역사가 미국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져왔다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음모가 아니라 미국의 일거수일투족에 일본의 정관계가 속박 당해 (미국의)낯빛을 항상 살펴가면서 정책을 수행해온 것일 따름이다. 원래부터 어느 나라든 자국의 국익을 제일로 삼아 움직이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이 책의 서문에도 있는 '미국은 일본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아니 일본을 한 번 쓰고 버리려고 하고 있다'는 논의 자체가 의미가 없다.'
30년 넘게 외교관 생활을 했다는 저자가 이런 국제정치의 리얼리즘을 감안하지 않고, 이렇게 과감한 책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의아할 따름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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