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4개월간 수사한 국정원 직원의 18대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해 "정치 관여지만 선거개입은 아니다"는 애매한 결론을 내렸다. 더욱이 조직적 개입 의혹의 연결고리인 국정원 간부는 조사도 하지 않아 '국정원 눈치보기 수사'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경찰은 지난해 12월 민주통합당이 대선 개입 의혹을 받는 국정원 여직원 김모(29)씨를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자 수사에 착수했다. '오늘의 유머' 사이트 등 압수수색과 IP 추적 과정에서 김씨의 인터넷 활동 전모 및 민간인 이모(42)씨, 또 다른 국정원 직원 이모(39)씨의 존재가 드러나자 국정원의 조직적인 선거 개입 의혹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하지만 경찰은 정치관여 금지 위반 혐의(국정원법)만 적용했을 뿐 민주당이 고발한 주요 혐의인 선거법 위반 혐의를 걸지 않았다. 대선 직전 수개월간에 걸친 정치 관여가 대선과는 무관하다는 판단이어서 논란이 적지 않다.
경찰은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 선거법 적용이 어렵고, 국정원법은 형량이 더 무겁고 공소시효도 길다"고 해명하지만 국정원법상 정치관여 금지는 조직이 아닌 직원 개인에게 부과된 의무다. 이 법이 적용되면 김씨 등의 인터넷 게시글은 특정 후보의 당락이란 목적을 갖고 벌인 활동이 아니라 단순히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못한 개인의 잘못으로 귀결된다. 이 때문에 정치권 등에서는 "국정원 직원에게 선거법 위반 혐의가 적용할 경우 몰아칠 후폭풍을 피해가려는 꼼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이광철 변호사도 "선거 국면에서 공무원의 정치 활동은 당연히 선거법 위반"이라며 "경찰 수사는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을 사전에 차단하는 정치적 고려 같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경찰은 조직적 개입 여부의 키를 쥐고 있는 국정원 심리정보국장을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경찰은 수사를 시작한 지 3개월이나 지난 이달 초에서야 심리정보국장에게 소환을 통보했고 두 차례 출석에 불응하자 강제수사를 검토하기는커녕 기소중지 의견을 달아 검찰에 송치하는 선에서 마무리 지었다.
이날 경찰이 밝힌 송치 사유는 선거법 공소시효 만료가 닥쳤다는 것이다. 경찰 입장에서는 선거일 후 6개월이 되는 6월 19일 전 검찰에게 최소한의 선거법 위반 혐의 수사 시간을 준 것이지만 스스로 못한 것을 떠넘긴 것과 다르지 않다. 만약 검찰이 김씨 등의 선거법 위반 혐의를 입증해 낼 경우 경찰의 위신은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검찰이 수사 중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을 고려해 현재까지 확인된 혐의만 송치한 것"이라며 "앞으로 검찰과 합동수사를 해서 최종 수사결과도 공동으로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송은미기자 my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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