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산업의 메카로 떠오른 경기 판교신도시가 임대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연구소 및 사옥 용도로 쓰겠다는 조건으로 싼값(감정가)에 들어온 IT업체들이 당초 약속과 달리 사무실을 임대로 내주면서, 주변의 기존 임대업자들이 "특혜, 불법 임대"라고 발끈하고 나선 것이다.
18일 경기도 등에 따르면 판교신도시 내 판교테크노밸리는 경기도가 정보기술(IT) 생명공학(BT) 문화산업기술(CT) 등 첨단기업 유치를 위해 조성한 연구개발단지. 서울 여의도 면적의 4분의 1 규모(66만1,925㎡)로 현재 44개 필지 중 21개가 완공됐다. 한글과컴퓨터 등 유명 IT업체와 관련 중소기업들이 들어왔고, 게임 제작업체 넥슨과 엔씨소프트도 연내 입주한다.
첨단기업들의 판교 행은 인센티브 덕이다. 경기도는 2006년 단일기업 또는 컨소시엄에게 '일반연구용지'(연구소 및 사옥 용도)를 실 거래가의 절반 정도인 감정가에 공급했다. 또 벤처기업 직접시설로 지정되면 재산세 및 각종 부담금 면제 기회도 줬다.
다만, 준공 후 10년간 매매를 금지하고 입주업종과 임대비율을 제한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일반연구용지의 60% 이상이 임대가 불가능(허용임대비율 0%)하다는 얘기다. 당시 입주를 원하는 기업들은 이 같은 조건에 이의를 달지 않았다.
문제는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불거졌다. 사업 확장과 연구개발에 매진할 생각으로 부지를 받은 기업들이 막상 입주할 시점이 되자, 다들 예상했던 만큼 사세가 확장되지 않고 오히려 덩치를 줄여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빈 사무실을 놀리느니 임대라도 해서 부수입을 노리거나 주력사업으로 까먹은 돈을 메울 생각을 하는 것이다.
실제 현 입주기업 중 상당수가 사옥 일부를 임대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허용임대비율 0%인 이노밸리빌딩은 130여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컨소시엄을 구성한 49개를 빼면 80여개 (임대비율 20∼25%)가 계약 위반인 셈이다. D빌딩(허용임대비율 0%)도 10개 층 중 4개 층 이상을 임대하고 있다. 임대비율이 50%에 가까운 빌딩이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U빌딩 분양대행사 관계자는 "전매공급이 풀리면 땅값이 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필요보다 크게 땅을 사들인 기업도 있다"고 귀띔했다.
해당 업체들은 딱한 사정을 이해해달라는 입장이다. 이노밸리 관계자는 "경기 침체로 규모가 줄어든 기업들이 계약 조건만 따르긴 어렵다"고 했다. 사옥 일부를 임대 중인 A업체 관계자도 "사업계획은 계획일 뿐이고, 팔지도 못하는데 관리비라도 건지려면 임대밖에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불만은 인센티브를 포기하는 대신 임대사업을 할 요량으로 '연구지원용지'를 매입한 동종업계에서 터져 나왔다. 연구지원용지는 임대 및 임대분양이 가능(허용임대비율 35~61%)한 대신 경쟁입찰을 통해 가격을 결정했다. S컨소시엄 관계자는 "연구지원용지 가격은 일반연구용지의 2배에 달했다"며 "연구를 위해 입주한 기업들이 렌트프리(무상임대)까지 제공하면서 싼 값에 사무실을 임대하는 것은 과도한 특혜"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지난해부터 경기도에 불법 임대를 막아달라고 요청했는데 소식이 없다"고 불평했다.
교통정리를 해야 할 경기도는 2월 실태조사를 벌인 뒤 사실상 수수방관이다. 경기도 관계자는 "연구개발과 관련 없는 업체는 쫓아내고 임대비율 문제는 고려 중"이라며 "곧 단지 조성 목적에 맞는 대책을 내놓겠다"고 했다.
그러는 사이 애꿎은 피해자도 나오고 있다. 일반연구용지 건물에 입주했던 ADT캡스는 연구개발과 관련 없는 경비업체는 입주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지난달 사무실을 비웠다. 그런데도 부근 부동산에선 "입주할 수 없는 업종도 사업자등록증에 업종을 추가하면 된다"고 편법을 부추기고 있다.
김민호기자 kimon8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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