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장관 및 지방자치단체장이 모인 회의 석상에서 참석자들을 강하게 질책하며 경질 가능성을 언급하는 영상이 공개돼 파문이 일고 있다. 대통령실은 대통령의 비공개 발언 장면 유출을 언론 탓으로 돌렸지만 일각에서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 내각을 교체할 명분을 쌓으려는 푸틴 측의 정략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러시아 뉴스웹사이트 라이프뉴스가 17일 공개한 문제의 영상은 1분43초 분량으로 전날 푸틴이 남서부 칼미키아 공화국에서 주재한 회의를 촬영한 것이다. 부총리, 경제개발장관, 재무장관과 공공기관장, 공화국 수반 및 주지사가 참석해 푸틴의 대선 공약인 주택정책의 이행 성과를 점검하는 자리였다.
영상에서 푸틴은 “마이크를 꺼달라”(취재진의 퇴장을 요청하는 신호)고 한 뒤 참석자들에게 “일하는 수준이 형편없고 피상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업무 수준을 높이지 못한다면 내 방식이 비능률적이라는 것을 인정하거나 여러분이 일을 못한 책임을 지고 그만둬야 한다”며 “나는 후자라고 생각하며 이는 누구도 착각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질책했다.
대통령실은 영상 유출을 “윤리적 관점에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비난하며 라이프뉴스의 취재 권한을 박탈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푸틴이 질책한 대상이 장관들이라는 언론 보도에는 “지자체장들에게 한 말”이라고 해명했다. 라이프뉴스는 영상 입수 경위를 밝히지 않은 채 “푸틴이 장관들을 언급하며 질책했다”고 반박했다.
러시아 정가에서는 17일 메드베데프의 의회 출석 직전에 영상이 공개됐다는 점을 들어 푸틴 측의 의도적 유출을 의심하고 있다. 의원들이 총리의 국정운영을 성토하는 시점에 맞춰 대통령이 장관들에게 강한 불신을 표명함으로써 메드베데프 내각의 신뢰도에 타격을 입히려는 책략이라는 것이다.
오랜 정치적 동반자로 대통령과 총리를 번갈아 맡아온 푸틴과 메드베데프는 지난해 푸틴의 대통령 3선 성공을 전후로 갈등을 빚고 있다. 새 정부 조각이 이례적으로 지체됐다. 지난해 9월에는 예산안을 둘러싼 이견이 불거지면서 푸틴의 견책을 받은 장관이 항의의 뜻으로 사임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모스크바의 정치전문가 알렉세이 무킨 정치정보센터장은 “푸틴은 악화한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사회보장 강화 공약을 대거 내놓은 반면 메드베데프는 초점을 경제발전에 맞추고 있어 손발이 맞지 않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