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재활병원. 이 병원 6층의 전산화 인지치료실에서 작업치료팀 성인파트장을 맡고 있는 오윤택(42)씨가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뇌졸중으로 마비 후유증을 앓고 있는 환자를 치료하고 있었다. 화면 속 풍선을 맞춰 움직이는 게임이다. 오씨는 "아까는 타이밍이 늦었는데, 이번엔 참 잘했다"며 연신 환자를 격려했다. 이 환자는 "예전에 다른 병원에서 치료받을 땐 치료 중에 맘대로 안되면 화를 내기도 했지만 요즘엔 오 선생님이 잘 다독여 주시는 덕분에 힘들어도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씨가 재활환자들의 마음을 조금 더 잘 헤아릴 수 있는 것은 본인도 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씨의 오른쪽 신발은 왼쪽보다 굽이 훨씬 높다. 4살 때 앓은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오른쪽 다리가 제대로 자라지 못한 탓이다.
오씨는 초등학교 때까지 어머니 등에 업혀 학교를 다녔다. 당시엔 자신을 이상하게 보는 남들의 시선이 싫어 외출도 거의 하지 않았다. 어렸을 적 꿈도 앉아서 일을 할 수 있는 과학자였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오씨는 재활치료사가 되기로 마음 먹었다. 오씨는"어린 시절부터 친근했던 재활에 마음이 갔고, 저를 치료해주신 선생님도 소아마비를 앓았던 분이었던 게 기억에 남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장애인 재활치료사가 된 오씨는 95년부터 19년째 장애인의 재활을 돕고 있다.
오씨는 환자들에게 "스스로 뭐든 해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해보지 않으면 어떤 점이 불편한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휠체어를 타고 극장을 가보지 않으면 어느 극장이 더 편한지,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 등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오씨는 "남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부딪혀서 경험해봐야 스스로의 상태를 알게 된다"며 "자신에 대해 정확히 아는 것이 치료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오씨는 치료했던 환자들 중에 장애를 이겨내고 사회에 당당히 복귀한 이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오씨는"교통사고와 뇌졸중으로 인지 기능이 떨어진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환자 3명을 모아서 치료한 적이 있는데, 한창 왕성하게 경제활동을 할 나이라 사회에 복귀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고 떠올렸다. 환자들에게 사장, 총무, 직원 등 역할을 나눠 회의 하는 훈련도 했고, 책을 읽고 돌아가며 발표도 시켰다. 오씨는 "환자들의 적극적인 참여 덕분에 치료를 시작한 지 1, 2년 안에 세 사람 다 직장에 복귀해 뿌듯했다"고 말했다.
최근 오씨는 장애인들의 사회 복귀를 돕기 위해 장애인 사회체육에 관심이 많다. 휠체어 농구단에 선수를 소개시켜 주기도 하고, 장애인당구협회에선 등급분류이사를 맡아 장애 등급에 따라 형평성에 맞는 규칙을 만드는 일도 하고 있다. 오씨는 장애인의 날인 20일에도 농구장을 찾을 생각이다.
오씨는 "장애인들 중엔 사회로 돌아가는 것이 두려워 이 병원 저 병원 전전하는 '병원 쇼핑'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하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선 당당히 맞서고 도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경준기자 ultrakj7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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