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유신시대의 긴급조치 9호에 대해서도 '위헌이므로 무효'라고 결정했다. 이 결정에 따라 긴급조치 재심에 대한 하급심 재판부들의 논란이 최종 정리되면서 피해자들의 재심 청구를 받아들일 수 있는 법률적 근거가 마련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8일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았던 홍모씨의 유족이 제기한 형사보상 청구에 대해 "긴급조치 9호는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권리 등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하거나 침해하며, 해제 또는 실효되기 이전부터 유신헌법에 위배돼므로 위헌 무효"라고 결정했다. 이어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면소(공소권이 없어 기소를 면제하는 것) 판결을 받은 경우, 긴급조치는 처음부터 위헌 무효이므로 애초부터 무죄 판결을 받아야 했으므로 형사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며 "국가는 홍씨에게 6,066만원을 보상하라"고 결정했다.
이날 대법원 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1979년 징역 1년이 선고됐던 배모(57)씨가 낸 재심 청구 기각에 대한 재항고 사건에서 "대법원이 긴급조치 9호에 대해 '위헌 무효'라고 선언한 것은 형사소송법상 재심 사유 중 하나인 '무죄 등을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된 경우'에 해당한다"며 "다른 재심 사유 없이도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 앞서 서울고법은 2009년 "재심 사유에 관한 주장 및 증거자료를 제출하지 않아 개시 사유가 없다"며 배씨의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지금까지 대다수 하급심 재판부들은 "대법원의 위헌 무효 결정을 '새로운 증거'로 보기 어렵다"는 논리로 긴급조치 9호는 물론, 이미 위헌 무효 결정이 난 긴급조치 1호에 대해서도 재심 개시를 수년 간 미뤄왔다. 현재 긴급조치 재심 청구는 서울고법에 80여건, 서울중앙지법에 20여건이 계류 중이다.
한편 대법원이 2010년 12월 긴급조치 1호를 위헌 무효 결정한 데 이어 이날 긴급조치 9호에 대해서도 "긴급조치는 법률이 아닌 명령ㆍ규칙에 해당해 위헌 여부는 법원이 심사한다"고 못박음으로써, 지난달 21일 긴급조치 1, 2, 9호를 위헌 결정하면서 "긴급조치는 법률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고 있어 위헌 심사 권한은 헌법재판소에 있다"고 선언한 헌재와 관할권 다툼을 이어갔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결정으로 긴급조치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이나 유족들은 형사소송법을 근거로 다른 재심 사유에 대한 증명 없이 재심을 청구해 무죄 판결 및 형사보상을 받을 수 있으며, 면소 판결을 받은 사람 또한 곧바로 형사보상을 청구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긴급조치 1, 4, 7, 9호 위반 혐의로 처벌된 피해자 수는 1,140여명에 이른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