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11일 밤, 술에 취해 귀가한 강모(45)씨는 10년 전 결혼한 부인 A(41)씨와 다투다 부엌칼을 들고 와 위협했다. 그리고 A씨를 방으로 데려가 강제로 성관계를 가졌다. 이틀 뒤에도 강씨는 부엌칼로 A씨의 이마와 팔에 상처를 입힌 뒤 두 차례 성관계를 가졌다. 검찰은 강씨를 특수강간죄로 기소했다.
부인을 위협해 강제로 성관계를 가진 강씨는 유죄일까, 무죄일까.
강씨 부부처럼 혼인관계가 정상적으로 유지되는 상태에서 부부강간죄가 인정된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18일 오후 2시 대법정에서 공개변론을 열었다. 부부 간의 강제적 성관계를 강간죄로 처벌할 수 있는지 여부를 놓고 찬반 양측은 팽팽한 공방을 벌였다.
쟁점은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유지해 오던 부인을 과연 강간 범죄의 피해자로 볼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피고인 강씨 측은 "우리 형법은 '부녀(婦女)'를 추행하거나 강간한 자를 처벌하도록 하고 있는데, '부녀'에는 '처(妻)'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포문을 열었다. 부부관계의 특수성을 인정할 때 처와 다른 여성을 같은 선상에서 볼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또 "강간죄를 인정하더라도, 이미 이혼 의사가 합의되는 등 실질적인 부부관계가 인정되지 않는 특별한 상황에서만 처벌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이 2009년 '더 이상 혼인관계를 지속할 의사가 없어 사실상 관계가 파탄됐을 때 법률상 배우자인 처도 강간죄의 객체가 된다'고 한 판결을 바꿀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에 대해 "'부녀'라는 단어는 기혼과 미혼, 성년과 미성년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여성을 의미한다"고 반박했다. 이건리 대검찰청 공판송무부장은 "처를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은 민법상 부부간 동거 의무(민법826조)를 근거로 하고 있지만, 그 의무가 폭행이나 협박이 동반된 강요된 성행위까지 포함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배우자에게도 당연히 성적 자기 결정권이 있으므로, 원치 않는 성행위 요구를 거절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다.
부부 간의 은밀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에 국가 사법권이 지나친 개입을 하는 것은 아니냐 하는 문제를 두고도 격론이 벌어졌다. 피고인 측은 "부부 간에 이번 사건같은 경우가 있더라도 이는 형벌이 아니라 가정을 유지시키려는 다른 보호수단이 먼저 나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주장했다. 과도한 형사처벌로 부부관계 회복의 여지 자체를 완전히 사라지게 하는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검찰은 그러나 "폭력으로 강제적 성행위를 하는 가정은 이미 위태로운 가정"이라며 "특히 부부 사이의 반복된 폭력은 타인에 대한 강간보다 더 중한 폭력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이를 처벌하지 않는다는 건 오히려 국가의 의무 방기"라고 반박했다.
강씨는 앞서 1, 2심에서 각각 징역 6년과 징역 3년6월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대법원이 유죄로 확정할 경우 강씨 사건은 부부강간죄로 처벌을 받는 첫 사례가 된다. 유엔은 1999년 한국이 남편의 부인 강간을 범죄로 인정하지 않는 것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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