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17일 한국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자율형사립고 도입 이후 심각해진 일반고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대입제도, 고교체제, 교원정책 등 큰 틀에서 교육의 방향을 고민해야 할 때"라며 "올해 안에 고교체제를 근본적으로 개편하는 대책을 마련해 박근혜 정부 5년동안 단계적으로 시행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고교다양화 300프로젝트'에 대해 "고교 교육의 다양화를 추구한 긍정적인 측면이 있으나 고교를 서열화하는 문제가 있었다"고 평가하며 이같이 밝혔다. 서 장관은 또한 교실 정상화를 위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으로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이고 교원 수를 증원하겠다고 밝혔다.
-고교 다양화 정책으로 인한 일반고의 소외 현상이 심각하다. 획기적인 대책이 필요한 것 아닌가.
"일반고의 위기는 오래된 문제다. 자율형사립고 정책을 어떻게 한다고 해서 해결되리라는 대증적인 방법으로 접근하는 건 맞지 않다. 큰 틀에서 접근해야 한다. 흔히 교육문제는 고구마밭과 비슷하다고들 한다. 땅 속에서 다 뿌리가 연결돼있어서 하나를 뽑으면 저 멀리 있는 또 다른 것도 뽑힌다. 대입제도, 고교체제, 교원정책 등 문제들이 다 얽혀 있고 이 중 어느 부분부터 접근해야 할지 선후 완급 경중을 따져보겠다. 급하게 해결할 것이 아니라 근원적인 접근을 하겠다."
-이명박 정부의 '고교다양화 300프로젝트'에 의해 도입된 자율형 사립고 등이 입시 위주 교육으로 변질되고 있어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장관도 과거 자사고 정책을 강하게 비판한 적이 있는데, 고교 체제는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가.
"고교단계에서는 아이들의 진로나 적성을 최대한 감안해 교육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고교 다양화 정책은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수직적 다양화로 치우친 면이 있다. 이를 어떻게 수평적 다양화해서 서열화로 인한 문제를 최소화하면서도 학생들의 다양한 욕구와 적성 맞춰주는 시스템을 만들 것인지가 당면한 큰 과제다. 단순히 자사고를 손볼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틀을 바꿔야 한다. 문제는 우리 국민이 교육을 통해 지위 상승을 꾀하려는 욕구가 어느 나라보다 강하기 때문에 이를 도외시한 채 (자사고 폐지 등) 정책을 만든다면 실현이 불가능하다. 올해 안에 근본 구조 개편에 대한 밑그림을 내놓겠다. 올해 방향을 잡으면 박근혜 정부 5년 동안 단계적으로 어떻게 바꿔나가야 할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고교체제 개편과 상관 없이 특목고, 자사고 등이 설립목적에 맞게 운영되고 있는지 당연히 교육부가 관리, 감독하겠다."
-학교현장에서는 교실 정상화를 위해 교원 1인당 학생 수를 줄이고 기간제 교사가 아닌 정규 교원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교육부의 교사 증원 요청이 예산 제한으로 번번이 좌초됐다. 교사 수를 늘릴 계획이 있나.
"중요 국정과제 중 하나이기 때문에 꼭 해결하려고 한다. 전국적인 학생 분포, 연도별 학생수 증감 추계, 재정 상황 등을 고려해서 최대한 필요한 교원을 확보할 수 있도록 확실한 근거를 만들어 안전행정부,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에 협조를 요청할 것이다. 정규 교원이 증원되리라고 본다. 감당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 또는 그 이상까지 확보할 수 있도록 교원을 증원할 것이다. 학교 현장이나 교대, 사범대에서 예측 가능하도록 교원 수급 계획을 수립해 내년부터 연차적으로 늘리겠다."
-교육부가 8월까지 대입 간소화 정책을 내놓겠다고 했다. 지난 정부에서 한국대학교육협의회와 대학들에 입시 전형에 대한 자율권을 주는 바람에 입시가 이토록 복잡해진 셈인데 이를 다시 규제할 수 있나.
"대학의 자율성이란 것도 대학 교육 또는 고교 교육이 정상적으로 이뤄지는 데 보탬이 되는 방향에서 보장돼야 한다. 고교교육을 어렵게 만들면서 자율권만 주장하면 사회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대입은 수험생, 학부모, 대학, 사회 등이 얽힌 문제다. 그런데 지난 정부에서는 대교협으로 대표되는 대학의 입장이 지나치게 많이 반영된 측면이 있다.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공정하게 반영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 현재의 대입제도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처럼 경쟁이 치열해져서 대학들도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다. 대학에 협조를 요청하면 공감대를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자율과 규제가 균형을 찾을 때가 됐다."
-A∙B형 수준별 수능도 오히려 학원가에서는 '둘 다 준비해야 한다'는 식으로 위기의식을 퍼뜨리는 등 부작용이 있고, 대학들도 반대하고 있는데 개선안을 검토하나.
"입시제도는 여러가지 요소가 얽혀 있는데 한 요소만 보고 고쳤을 때 문제가 될 수 있다. 수준별 수능도 선의로 시작했을지 모르지만 수험생을 더 복잡하게 하고 있다면 풀어야 한다. 수능 하나만 따로 떼어볼 수는 없고 내신 논술 입학사정관제 등 전체 입시제도?전면적으로 검토하면서 함께 들여다 보겠다."
-선행교육을 규제하는 '공교육정상화촉진특별법'이 대통령의 공약인데 실질적인 규제 방안이 있나.
"대입 전형에서 논술, 면접 등에서 고교 교육과정의 범위와 수준을 벗어난 내용을 출제하거나 평가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이를 어겼을 때는 '교육과정운영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시정명령을 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이 명령을 따르지 않을 때는 총장ㆍ학교장, 관련 교원에 대한 징계 또는 징계 요구, 재정지원 중단 및 삭감, 학생 정원 감축 등의 조치를 취하도록 해서 실효성을 확보할 예정이다."
-야당은 사교육 시장에서의 선행교육까지 규제하는 다른 법안을 발의했는데.
"공교육정상화촉진특별법의 목적은 사교육을 줄이는 것이라기보다 공교육이 제대로 되도록 해보자는 취지다. 공교육정상화촉진특별법은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선행교육을 방지하려면 법적으로 어떤 규제를 해야하느냐는 측면에서 준비 중이다. 그런데 사교육 규제는 검토할수록 어려운 점이 많다. 모든 걸 다 규제할 수는 없다. 사교육 규제와 관련해서는 '사교육까지 제대로 규제하지 않고서는 공교육이 정상화 되겠느냐', '기술적으로 규제가 어려운데다 무리한 규제다'라는 양론이 있는데 마지막 조율 중이다. 국회에서도 여야 간 조율이 이뤄질 것이다."
-자유학기제는 '꿈과 끼를 키우는 행복교육'을 실현하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핵심 교육정책이다. 어떻게 성공적으로 이끌 생각인가?
"자유학기제는 자유학기를 어떻게 운영하느냐에만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꾸준히 학생들의 진로와 적성을 찾아서 키워주겠다는 취지로 접근한다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학기에 집중적인 진로 적성 프로그램을 운영한 이후에도 진로를 찾을 수 있도록 연계돼야 한다. 2016학년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할 계획이므로 2년 6개월 정도 준비기간이 있다. 올해 안에 40곳 안팎의 시범학교를 선정해서 보완 해나가면서 시행해 박근혜 정부 5년으로 그치지 않고 다음 정부까지 안정적으로 이어지는 제도로 만드는 게 목표다."
-지난 정부에서 학교폭력 가해학생의 학생생활기록부 기재, 학생인권조례 등을 둘러싸고 소송으로 비화하는 등 교육부와 시ㆍ도교육감 사이에 갈등이 있었는데 어떻게 해소해야 할까.
"사실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인데 문제다. 교육부와 시도교육감 양쪽 다 잘못이 있었다. 교육부 차원에서 자성해본다면 초중등 교육 정책을 만들 때는 시도 교육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서 만들어야 하는데 그 점에서 미흡했다. 시도교육감이 운용하는 부분까지 교육부가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하다보니 교육감들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면 있었다고 생각한다. 반면 일부 교육감은 제도의 틀 자체를 바꾸려고 시도한 면이 있었다. 예를 들어 학교폭력의 학생부 기재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고 교육부 방침이 정답은 아니겠지만 16개 시도가 다 하지 않으면 효과를 볼 수 없다. 일단 제도가 됐을 때는 인정하고 향후 논의를 통해 바꿔야 한다. 제도 이행이 안 되니 교육부로서는 강제 수단을 쓸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는 분명히 교육부와 시도교육청 간에 소통 부족에서 생긴 문제다. 앞으로 시도교육감들에게 충분히 의견을 들어 협력적인 파트너십을 유지하려고 한다. 그러나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로 생긴 과거의) 법적인 문제는 시간을 갖고 풀 수밖에 없다."
●서남수(61) 교육부 장관▲서울대 철학과 ▲미국 일리노이대 교육학 석사 ▲동국대 교육학 박사 ▲교육부 행정사무관(행시22회) ▲교육부 차관 ▲경인교대 석좌교수 ▲위덕대 총장
대담=김희원 차장 hee@hk.co.kr
정리=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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