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계열사에 몰아줬던 6,000억원 규모의 일감을 중소기업에 주기로 했다. 정부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강도 높은 규제입법이 추진되는 상황에서, 주요 그룹 가운데 가장 먼저 일감 몰아주기 축소에 나선 것이다. 타 그룹들도 일감 몰아주기 축소 또는 포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현대차그룹은 17일 ▦물류 분야 일감 4,800억원어치 ▦광고 부문 일감 1,200억원어치를 중소기업에 직접 발주하거나 경쟁입찰에 붙이겠다고 밝혔다. 이는 금년도 물류 발주액의 45%, 광고 발주액의 65%에 해당하는 규모로, 사실상 전체 물류ㆍ광고분야 일감의 절반을 중소기업에 넘기는 셈이다.
현대차그룹은 그간 물류 계열사인 글로비스에 국내 자동차 배송과 수출, 계열사 공장간 부품 운송 등의 일감을 수의계약 형태로 몰아줘왔고, 현대ㆍ기아차의 광고나 모터쇼 프로모션 등은 광고계열사인 이노션에 집중 배정해왔다. 그 결과 글로비스의 국내 물류사업 중 계열사 거래비중은 82%(1조455억원), 이노션의 국내광고 중 내부거래비중은 52.7%(2,005억원)에 달했고, 두 회사 모두 오너일가 지분율이 높은 회사여서 부의 변칙증여 지적도 받아왔다.
현대차는 경쟁입찰의 모양새만 취한 뒤 실제론 계열사에 그대로 일감을 몰아주는 것을 막기 위해, 각 계열사마다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가칭 '경쟁입찰 심사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글로비스는 새로 선정된 사업자에게 물류 노하우를 전수하고 국내 중소 물류기업들의 경쟁력개선을 돕기 위한 '물류산업진흥재단'도 만들기로 했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현대건설과 엠코 등 건설 계열사를 갖고 있으며, SI계열사인 현대오토에버의 내부거래비중도 매우 높은 상태. 현대차 관계자는 "건설이나 시스템통합(SI) 등 분야에서도 경쟁입찰을 지속적으로 늘려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다만 글로벌 브랜드 관리와 해외 스포츠 마케팅 등 글로벌 네트워크가 필요하거나, 보안유지가 필요한 신차 및 개조차 광고 제작 등은 경영상 불가피하게 현행 배정방식을 유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가 '자발적 일감몰아주기 축소'에 나섬에 따라 다른 대기업들도 유사한 조치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그룹은 작년 1월부터 물류, 광고, SI, 건설 등 4개 업종에서 경쟁입찰을 확대하고 있으며, 삼성전자 삼성생명 삼성화재 등 주요 계열사들은 내부거래위원회까지 만들었다. 삼성 관계자는 "업무상 꼭 필요한 것만 아니라면 내부거래비중을 지속적으로 줄여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SK그룹 역시 SI계열사인 SK C&C와의 거래물량을 축소하고 있다. SK텔레콤과 SK이노베이션은 올해 SK C&C와 거래규모를 최대 14%가량 줄이기로 한 상태다.
재계 관계자는 "대부분 그룹들이 내부거래 물량 자체를 줄이는 쪽으로 조달계획을 다시 수립중인 것으로 안다"며 "특히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집중될 총수지분 30% 초과 계열사들은 내부거래 비중을 크게 줄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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