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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어는 기억할까, 광활했던 은빛 물보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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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어는 기억할까, 광활했던 은빛 물보라를

입력
2013.04.17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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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황강이제. 여선 그렇게 불러. 인자 물이 뿔어넘칠 일도 없지만서도."

장흥 땅 일림산 자락에서 솟아오른 보성강은 보성 거쳐 순천 주암댐에서 한 번 막혔다가, 곡성에서 다시 강의 꼴을 되찾아 흘러 구례 언저리에서 섬진강에 합수된다. 전라도 사는 사람 아니면 이름도 낯설고 찾아가본 일은 더더욱 없을 작고 여린 강이다. 그런데 곡성 사람들은 이 하천에 클 대(大)자, 거칠 황(荒)자 붙여 대황강이라고 부른다. 순천과 곡성 경계인 석곡면부터 섬진강 합수부까지 이어진 강변 도로의 이름도 '대황강로'다. 석곡리 사는 이건규(53)씨의 기억을 들어보자.

"댐을 막아놔서 이렇지 여가 본래는 은모래밭이 허천나게(어마어마하게) 넓었던 곳이여. 큰물이 지면 꺼먼 황톳물이 넘쳐나서 대황강이라 그랬제. 여튼 수양버들 필 때여. 가을에 바다 갔던 은어떼가 돌아온당께. 은어가 월매나 많았던지, 그냥 손으로 뜨면 돼야. 그라믄 수박향이 허벌… 고실고실 구워놓은 그 버들은어 맛 땜시롱 여길 못 떠났제."

보성강은 작아서 예쁜 강이다. 헌데 30년 전엔 꽤 큰 강이었나 보다. 주암댐 건설이 시작된 게 1984년, 애그니스 태풍으로 100명이 넘는 사람이 죽고 3년 지나서다. 댐으로 물난리 걱정은 덜었지만 푸짐했던 대황강(보성강) 강심에 대한 주민들의 자랑은 짜부라졌다. 농사일 끝내 놓고 이웃끼리 쌀 걷고 계란 추렴해 한바탕 화전(야유회) 벌이던 은빛 모래밭도 사라졌다. 지금도 은어는 찾아오지만 양은 예전의 20분의 1에도 못 미친단다. 산란지인 상류가 막힌 데다가 바다로 통하는 섬진강도 곳곳에 수중보가 설치됐기 때문이다.

보성강 풍경은 특이하다. 상류가 하류 같고 하류가 상류 같다. 주암댐 위쪽은 가둬 놓은 물로 인해 넓고 깊은데, 댐 아래쪽 하류는 졸졸졸 흐르는 물길이 무척 작고 탐스럽다. 그래서 사람 손 덜 탄 자연 하천의 모습을 보려는 사람들은 부러 보성강 하류를 찾기도 한다. 그러나 관광지로 개발된 바로 옆 섬진강에서 보성강 쪽으로 길을 꺾어 들어오는 외지 차는 아직 드문 편이다. 석곡면에서 합수부인 압록 유원지까지 흐르는 물길은 약 22㎞. 방죽 위로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한나절 여행하기 좋은 거리다.

강은 크게 사행하는 곡류 없이 순하게, 느릿느릿 흐른다. 지금 막, 봄꽃이 지천이다. 강을 포근하게 감싼 산에 꽃나무가 많아서 마치 일부러 꾸며 놓은 커다란 정원 같아 보인다. 4월의 낮 공기는 그리 투명하지 않은 편이라, 그 빛깔을 제대로 눈에 담으려면 아침 일찍 강변에 나와봐야 한다. 12일 아침, 강엔 옛날 글씨를 익힐 때 쓰던 미농지처럼 얇고 보드라운 물안개가 피어 있었다. 발목을 감은 안개는 벚꽃잎이 떨어지는 속도로 하류 쪽으로 움직였다. 부지런한 새 몇 마리가 그 미농지에 검은 점으로 찍혀, 강의 흐름과 상관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뭐, 가을엔 세수하러 갔다가 참게를 그냥 주워올 정도였다니까. 짚을 꽈서 수수를 꽂아 넣어두기만 하면 바구니 가득이었응께. 그게 인자 한 마리 만원이 넘어. 아 참, 최씨 아저씨, 십년 전에 죽은 냥반인데, 그 냥반은 완전히 장님인데도 물고기 잡아먹고 살았제. 참말이여."

죽곡면에서 길 묻느라 말을 붙인 정종호(49)씨도 어린시절 천렵의 물비늘 기억 속에 보성강의 옛날을 담고 있었다. 아름드리 버드나무가 가득하던 강변과 나락 찧던 물레방아 등등. 그런 것이 다일까. 면사무소 들어가서 기록을 뒤져봤다. 역시나 이 강줄기도 사연이 깊었다. 섬진강 압록 유원지에서 보성강 쪽으로 길을 꺾으면 가장 먼저 경찰승전탑을 만나게 된다. 한국전쟁 때 경찰이 인민군을 격퇴한 공을 기리기 위한 탑이다. 당시 경찰 부대의 본부가 있던 태안사에는 희생된 넋을 위로하는 충혼탑도 있다. 하지만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한 역사도 있다.

한국전쟁 이태 전, 곡성은 여순사건의 한복판이었다. 1948년 10월 19일, 제주 4ㆍ3항쟁을 진압하라는 명령을 거부한 여수의 국군 14연대는 순천, 보성, 구례, 곡성 등을 차례로 접수한다. 지금 보성강이 흐르는 곳이다. 하지만 곧 들이닥친 토벌은 무차별적이었고 강은 피바람을 피할 수 없었다. 당시 이유 없이 죽은 사람들의 이름이 면지에 빼곡히 담겨 있었다. 복다리 마을엔 정사수꾸리라는 사람이 살았나 보다. 면지에는 그 해 12월 20일, 그가 아내와 14살 된 딸, 12살 된 아들과 함께 경찰에 총살됐다는 사실이 단 두 줄에 담겨 있었다.

태안사는 보성강 주변에서 거의 유일하게 관광 지도에 위치가 표기된 곳이다. 구산선문의 하나로 한때 짱짱한 위세를 떨쳤다. 그러나 지금은 한적한 산사의 고즈넉함이 고여 있다. 가는 길에 시인 조태일(1941~1999) 기념관이 있다. 시인은 태안사에서 태어났다. 기념관엔 벼린 죽창 같았던 그의 삶과 시 세계를 알 수 있는 자취가 전시돼 있다. 관심을 끈 건 시인보다 시인의 어머니 얘기였다. 일제시대 대처승에게 시집와 서른 일곱에 과부가 되고, 모진 세월에 자식 셋을 앞세운 그니의 삶이 한 편의 짠한 서사시였다.

여울을 거슬러 보성으로 가니 강의 모습이 사뭇 달랐다. 콘크리트에 갇힌 물줄기는 댐의 수위조절에 따른 테두리가 뚜렷했다. 지금은 물이 줄어 누런 황토가 수면 위로 1m 넘는 높이로 드러나 있었다. 한참을 더 거슬러 오르자 강의 폭이 갑자기 줄고 지방하천의 지류 같은 초라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정비 작업이 진행 중이고 최근 조성된 생태 공원도 있었지만, 앞으로도 상류의 보성강은 애처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진 은어가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일까. 다시 차를 돌렸다. 돌실(石谷) 너머 다시 어여쁜 강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보성강, 아니 대황강의 윤슬이 푸릇푸릇한 봄을 품에 안고 있었다.

여행수첩

●호남고속도로 석곡IC에서 나오면 바로 보성강 물길을 볼 수 있다. 섬진강 합수부까지 강을 따라 차도가 닦여 있다. 차도가 있는 반대 강변엔 현재 자전거와 트레킹을 위한 길이 조성 중이다. 곡성군 관광개발과 (061)360-8324 ●보성강변 죽곡면과 목사동면에 캠핑장이 한 곳씩 있다. 죽곡면에선 카누를 탈 수 있다. 1시간 1만2,000원(2인용 2만원). 죽곡 카누 캠핑장 (061)362-8014. 섬진강 부엉이 오토캠핑장 (061)362-8466.

곡성=글·사진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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