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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식당이 야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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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식당이 야해졌다

입력
2013.04.17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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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급호텔 식당에서의 한 끼 식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근사한 요리로 포식하는 날'을 의미한다. 이 '포식'이라는 단어에서 우리는 당연한 절차처럼 고기요리를 떠올린다. 스테이크든 갈비구이든 꿔바로우(찹쌀 탕수육)든, '훌륭한 한 끼 식사'는 고기 요리를 빼고는 쉽사리 상상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호텔 식당가의 메뉴판에서는 권력 이동이 한창이다. 건강식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불멸의 '미식 패권'을 쥘 듯 보였던 육류 메뉴들은 줄어들고, 신흥 세력으로 무섭게 떠오른 야채와 두부, 해산물 등이 메뉴판의 영토를 확장하고 있는 것. 여기에 채식주의자들까지 가세하면서 호텔 식당들이 앞다퉈 건강식으로 메뉴판을 갱신하고 있다.

고기 주문 60% 감소한 곳도

이 같은 트렌드는 수치로 확인된다. 웨스틴조선호텔의 중식당 '홍연'이 2008~2011년 사이 고객들이 주문한 메뉴를 분석한 결과, 육류 요리는 3년 사이 약 60% 정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야채와 두부 요리는 각각 40%가량 증가했다.

양식 코스요리의 꽃이라 할 만한 메인요리에서도 스테이크의 위상이 예전만 같지 못하다. 이 호텔의 양식당 '나인스 게이트 그릴'의 경우, 디너 코스에서 생선 요리를 주문하는 고객의 비중이 약 20%나 차지할 정도다.

밀레니엄서울힐튼호텔의 경우도 비슷하다. 곽용덕 홍보ㆍ신규사업부 팀장은 "중식당 '타이판'은 쇠고기보다 조개 관자 우럭 새우 전복 같은 해산물 메뉴가 강세를 보이고 있고, 일식당 '겐지'의 경우 일본식 즉석 철판구이 요리인 테판야키의 메인요리로 쇠고기 대신 생선을 선택하는 고객이 증가 추세"라고 말했다.

호텔들이 특정 시기마다 야심차게 선보이는 프로모션 메뉴에서도 해산물과 야채 샐러드를 테마로 한 것들이 눈에 띄게 증가한 양상이다.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호텔은 지난해 다이닝카페 '더 뷰'의 '시푸드뷔페'와 한식당 '온달', 중식당 '금룡', 일식당 '기요미즈'가 공동 진행한 콩 두부 해산물만을 이용한 점심 메뉴가 큰 인기를 끌자 올 3월부터 이와 비슷한 '지중해 브런치 뷔페' '남해 미각 여행' 등의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다.

웰빙바람이 요리법까지 바꿔

건강식으로의 권력 이동은 요리법에도 변화를 불러왔다. 특히 튀기고 볶는 조리법이 많아 먹고 나면 속이 더부룩한 중국 요리에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 주로 볶고 튀기는 육류 중심의 북경식과 달리 영양소 파괴가 적은 광동식 요리법이 각광받고 있는 것.

웨스틴조선의 홍연은 광동식 요리법을 채택한 대표적인 중식당. 광동식은 바다가 인접해 있어 해산물을 많이 사용하며, 외국과 교류가 빈번했던 역사 때문에 서양 요리법과 식재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식재료의 맛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소스나 양념 등의 간을 약하게 하고, 기름을 적게 해 센 불에 빠르게 볶는 것이 광동식의 특징. 그래서 신선하고 담백하며 쫄깃한 식재료 고유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정수주 홍연 주방장은 "식재료에 밑간을 충분히 해 은은하게 맛이 배도록 하기 때문에 홍연에는 중국 요리를 먹을 때 늘 따라 나오는 간장과 고추기름이 없다"며 "속이 편안하고 담백한 음식을 찾는 고객들의 요구에 맞춰 조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르네상스 서울 호텔의 홍보 코디네이터 박지윤씨도 "중식당 가빈의 경우 담백하고 간을 약하게 해서 요리해 달라고 주문하는 손님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채식주의자를 위한 메뉴도 구비

식사할 마땅한 곳을 찾기 어려운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메뉴가 등장한 것도 최근의 새로운 트렌드다. 밀레니엄 서울 힐튼은 연회시 채식주의자들을 위해 '지중해식 전채 요리-야채수프-버섯 커틀렛과 야채국수-과일-녹차 혹은 인삼차', '모듬야채구이-카레향의 코코넛수프-양송이 버섯 리조또-두부 스테이크와 시금치 샐러드-참깨과자와 레몬크림-녹차 또는 인삼차'로 구성된 두 가지 코스 메뉴를 상시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20ㆍ30대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웨스틴조선의 이탈리안 비스트로 '베키아 에 누보'는 아예 올해부터 채식주의자를 위한 전용 메뉴를 새롭게 선보이고 있다. 슈퍼푸드 샐러드, 버섯 시금치 샐러드, 두부 야채 구이, 야채 라자냐, 버섯 리조토, 레틸 수프 등 여섯 가지 음식이 메뉴판에 새로 이름을 올렸다. 5월부터는 생선과 고기는 먹지 않고 우유 등 유제품은 먹는 '락토 베지터리언'들을 위해 버섯버거, 야채버거 등의 메뉴가 추가될 예정이다.

르네상스 서울 호텔의 뷔페 레스토랑 '카페 엘리제'는 웰빙을 추구하는 고객들이 많아짐에 따라 기존의 프로모션 메뉴를 없애고 아예 유기농 샐러드 코너를 상주시키고 있다. 홍보 코디네이터 박지윤씨는 "종교적 신념에 따른 특별한 식습관을 가진 외국인 투숙객들도 많고 국내에서도 채식주의자가 늘고 있는 추세"라며 "웰빙 메뉴의 등장은 이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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