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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벚꽃은 흩날리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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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벚꽃은 흩날리고 있지만

입력
2013.04.1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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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난 주엔 올해 2월 졸업한 제자 한 명이 학교로 찾아왔다.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않고, ‘잠수를 탔다’는 풍문만 들려오던 스물네 살 친구였다. 문학을 전공으로 하는 친구들인지라 ‘잠수를 탔다’면 작품을 쓰느라 그러겠거니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상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다. 취업은 제대로 되지 않고, 부모님 눈치 보기도 괴로우니, 공공 도서관이나 PC방 같은 곳을 전전하며 시간을 때우는 졸업생들의 소식이 왕왕 귀에 들어왔다. 말은 안 했지만 그 친구 역시 비슷한 처지인 것만 같았다. “그냥 지나가는 길에 들렸어요”하며 말끝을 흐리는 표정 속엔 어쩐지 먹장구름 같은 것이, 명도 짙은 그늘 같은 것이 잔뜩 끼어 있었다. 상상력도 뛰어나고, 언어감각도 남다른, 그 감각을 다시 회의하면서 한 문장 한 문장 쓰던 제자였다. 소설을 쓰겠다며 훌쩍 보성 근처 사찰로 들어간 적도 있었고, 자신이 쓴 소설 때문에 한밤중 불쑥 전화를 걸어 무엇이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따지듯 물었던 전력이 있던 친구였다. 내 눈썰미가 틀린 것이 아니라면 삼사 년 정도 마음잡고 소설에만 전력한다면 독특하고 섬세한 작가로 성장할 가능성이 큰 친구였다. 아마도 그 때문에 찾아온 것이겠지. 글은 써지지도 않고 그에 비례해 답답한 마음은 더 커져만 갔을 테니. 나는 나름 그렇게 짐작하고 위로라는 것을 한답시고, 문학이 어디 4년 만에 쉽게 성과를 볼 수 있는 것이더냐, 선생님도 작가되는 데 딱 10년 걸렸다, 운운 거렸는데, 그래도 제자의 그늘은 쉽게 가시지가 않았다. 가시기는커녕, 고개를 푹 숙인 채 잠자코 내 말을 듣던 제자는, 어느새 눈 주위가 벌겋게 변하는가 싶더니, 애써 울음을 삼키고 있는 게 역력해 보였다. 그건 말하지 않아도 나도 알고, 또 제자도 아는 일이었다. 말이 삼사 년이지 그 누구도 그 세월을 그리 간단하게 말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아마도 제자는 그것 때문에 내 앞에서 속울음을 흘리고 간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제자는 앞으로 삼사 년 동안 공무원 시험 같은 것을 준비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고, 전공과 무관한 중소기업에 입사해 분기별 대차대조표 같은 것을 작성하면서 하루하루 지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문득 자신의 대학생활을 회상하면서 씁쓸한 하루를 지내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이 내가 바라보고 있고, 내가 지켜보고 있는 우리 젊은이들의 현재이다.

이런 현재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이 땅을 지배하고 있는 ‘실용주의’ 교육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대학에 요구하는 교육은 ‘즉시 산업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인재’들이다. 대학은 그에 부응이라도 하듯 취업률이 낮은 학과를 통폐합하거나 구조조정하고 있다. 대학은 노량진 고시학원이나 자격증 취득학원과 비슷한 구조로 운영되면서 오로지 전문적 취업 교육에 너나없이 몰두하고 있다(그것은 또한 정부가 원하는 대학의 존재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니 유연한 사고방식이나, 인간에 대한 열린 정신, 상상력 따위가 들어설 곳은 없다. 그것을 기다려주는 사람들도 없다. 오로지 기능적 취업 교육, 그것이 절대 선이자, 대학의 존재목적이 되어버렸다. 조금만 더 생각을 해보면 유능한 직업인이나 전문인은, 바로 유연한 사고방식과 인간에 대한 열린 정신, 상상력 같은 것들이 필수적일 텐데, 눈앞의 수치에 연연해 그 모든 것을 외면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몇 년 후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게 될지도 모른다. 전문성만 높아진 채,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젊은이들. 이미 우리들은 그런 친구들을 눈앞에서 마주하고 있다.

이제 곧 6월이 되면 각 대학의 취업률 현황이 공지될 것이다. 4대 보험 가입여부로 확인된 취업 현황이다. 교육하는 사람들의 존재목적은 무엇일까? 전문가의 양산일까, 더 나은 인간의 양성일까? 벚꽃들이 난분분하게 날리고 있지만, 바람은 어쩐지 더 차갑게만 느껴지는 봄날이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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