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오후 4시 30분(현지시간)쯤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북서쪽으로 80㎞ 떨어진 앙헬레스(Angles)시 코리아타운. 중식당에서 나와 차량에 탄 한국인 3명을 향해 갑자기 총알이 쏟아졌다. 대낮 총격으로 환전업소를 운영하는 임모(34)씨가 현장에서 숨지고 남모(34)씨가 중상을 입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이들의 차에서는 약 50만 페소(1,350만원)가 든 현금 가방이 사라졌다. 현지 경찰은 필리핀인으로 추정되는 괴한들이 돈을 노리고 총격을 가한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골프장이 많고 밤문화가 발달한 앙헬레스에서는 지난 2004년 2월에도 프로골퍼 전모씨가 술집에서 총을 맞고 숨졌다. 왜 필리핀에서 유독 한국인이 강력범죄의 타깃이 되는 것일까.
외교부에 따르면 지난해 필리핀에서 살해당한 한국인은 모두 8명.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범죄로 숨진 한국인 27명 중 약 3분의 1을 차지했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중국에서도 한국인 사망자는 5명밖에 안 된다. 필리핀에서는 2011년 7명, 2010년 6명, 2009년 5명 등 매년 많은 한국인들이 범죄의 희생자가 됐다.
지난해 필리핀에서는 살인 외에도 한국인 상대 강도 4건과 납치ㆍ감금사건 6건이 발생했고, 절도는 243건이나 일어났다. 강도는 우리 공관에 접수되는 것만 매년 10건 안팎이다.
반면 인근 동남아국가인 베트남 말레이시아 태국에서는 지난해 살해당한 한국인이 한 명도 없다. 캄보디아에서만 1명이 숨졌을 뿐이다.
필리핀에서 유독 한국인 상대 범죄가 판치는 데는 치안 불안정이 큰 요인이다. 이슬람반군단체와 40년간 내전을 겪은데다 미국문화의 영향으로 총기소지가 가능해 총기범죄가 빈번하다. 심지어 경찰이 한국인 관광객 등을 협박하는 일까지도 벌어진다. 4년 전 마닐라를 다녀온 A(37)씨는 "빈 술병을 들고 바닷가를 걸었을 뿐인데 경찰이 중죄라며 초소로 끌고가 총을 머리에 들이대 공포에 떨었다"며 "돈을 쥐어 준 뒤에야 겨우 풀려나 다시는 가고 싶지 않다"고 치를 떨었다.
유흥을 즐기려는 필리핀 관광 목적이 범죄 피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골프와 성매매를 엮은 패키지 관광은 물론, 카지노 도박을 위해 필리핀을 찾는 한국인들이 많아 그만큼 범죄에 노출될 우려도 크다. 특히 성매매 등은 현금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현지인들 사이에서 '한국 남성은 현금을 많이 갖고 다닌다'는 인식이 퍼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인 상대 범죄가 끊이지 않자 인터넷에서는 '자존심 강한 필리핀인들을 무시하면 안 된다' '위험한 곳은 아예 가지 말아야 한다" 등 안전한 필리핀 여행을 위한 조언들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공관에서 필리핀 경찰들과 조속하고 엄정한 수사를 위한 관계 구축을 위해 노력 중"이라며 "외국인만큼 관광객들도 현지정보를 꼼꼼히 챙기는 안전에 보다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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